내년 9월 말 시행되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또 한번 논란에 휩싸였다. 불을 지핀 건 “김영란법 시행으로 명절 선물에서 농축수산물이 제외돼선 안 된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었다.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즉각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냈다. 이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법 적용 대상을 고위 공직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쟁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농축수산물 제외해야” vs. “법 취지 무력화”=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19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농산품의 40%가 설이나 추석 명절에 선물용으로 소비되고 있다”며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농산품의 유통 체계가 마비되고 농가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최근 김영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품 수수 금지 예외 대상에 ‘농수산물 품질관리법에 따른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 및 명목에 관계 없이 같은 사람에게서 1회에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받도록 했다. 단 사교나 부조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 경조사비 등은 허용했다. 허용 금액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가액 범위에 대한 여론 수렴을 마치고 이르면 다음주 이를 국회에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허용 가액은 5만~7만원 수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개정안 제출에 동참한 의원들은 금액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명절물용 농축수산물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법을 심사했던 국회 정무위원회는 “예외 조항을 두는 건 불가능하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한번 예외 조항을 두면 ‘재래시장에서 발행하는 상품권도 예외로 하자’ ‘중소기업 제품도 예외로 하자’는 식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김영란법 개정 주장은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용일 뿐”이라며 “개정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공직자 범위도 여전히 논란…고치자니 여론 부담=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에 학교 교원과 언론사 종사자까지 포함된 데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법안 심사 과정에서부터 과잉 입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정무위는 일단 시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해나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이냐”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도 방치하는 건 국회의 직무 유기”라고 했다. 이 의원은 “법안 통과 당시 여야 원내대표가 여론에 밀려 급하게 합의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사위원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지금이라도 고위직만 적용 받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김영란법에 대해선 이미 헌법소원도 제기된 상태다. 언론과 사학법인이 공직자 범위에 들어간 것이 평등권에 위배되고, 배우자에게 금품 수수 신고를 의무화한 점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실제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과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금지한다는 게 법 취지여서 이를 손대는 데 대한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가 지난 3월 김영란법에 문제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통과시킨 데는 국민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또다시 논란 휩싸인 김영란법, 시행도 되기 전에 개정 목소리, 무엇이 문제
입력 2015-08-19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