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위, 권한 위상 커졌지만 국회 비협조로 제자리걸음

입력 2015-08-17 16:20
사상 첫 독립기구로 발을 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의 늑장 대응으로 당초 취지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획정위는 국회 결정과는 별개로 획정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한 획정위원은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하는 시한(10월 13일)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국회에서 획정 기준조차 안 주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지난 19대 총선 때 적용됐던 법률과 세부 규칙에 따라 할 수 있는 데까지 획정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했다.

획정위는 현행법과 공청회 등을 통해 수렴한 의견을 고려해 획정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아직 의원 정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지역구 의원 수가 현행(200명)을 유지할 경우, 늘어나거나 줄어들 경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 다른 획정위원은 “논의 도중에라도 국회가 의원 정수와 획정 기준을 확정하면 반영할 수 있도록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획정위는 과거에 비해 권한이 커졌다.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기구로 설치돼 독립성을 강화했다. 국회는 획정위가 내놓은 안이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에 한해 한 차례 재제출을 요구할 수 있을 뿐 내용은 손 댈 수 없도록 했다. 이 두 가지가 지난 5월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핵심 내용이다.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보다 획정위 역할이 훨씬 커진 셈이다.

국회가 이처럼 획정위에 힘을 실어준 건 역대 선거 때마다 획정위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획정위 안은 단순 참고용에 그쳤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과거 획정위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획정위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국회에 대한 비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획정위 내부에선 정개특위가 획정위를 무력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정개특위 위원은 “획정위는 획정위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정개특위가 국회 의견을 수렴해 전달하면 논의 과정에 반영하면 된다”고 했다.

획정위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 관련 현행법은 기본 원칙 정도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하기엔 애매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가 획정위 안이 법률에 위배될 경우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획정 기준을 법률 사항으로 확정해줘야 된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