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불알꽃,개나리…풀꽃 이름에도 식민 잔재 남아

입력 2015-08-17 16:18

‘큰개불알꽃’이라는 민망한 꽃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일본어 ‘이누노후구리(犬の陰囊·개음낭)’를 한국말로 옮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일제 강점기 이름을 빼앗긴 건 이 땅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풀, 꽃, 나무도 제 이름을 잃고 일본 이름으로 굳어졌다. 식민지 시기 일본 식물학자들이 조사, 분류, 작명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또는 엉터리로 수용해 지금껏 쓰고 있다.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처럼 한국말로 쓰였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름들이 난무하고 “잎은 호생하고 심장형이며 전연이고 점첨두이다” 같은 일본식 용어로 쓴 설명이 통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문화 속의 일본 잔재를 추적해온 저술가 이윤옥씨가 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은 식물 이름에 남아있는 식민지 흔적을 고발한다.

봄을 대표하는 꽃인 개나리를 일본 학자들은 ‘조센롄교’라고 명명했다. 조선을 뜻하는 ‘조센’이 붙어 있으나 한국어 번역자들이 ‘조선’을 떼버리고 ‘개’를 붙였다. 가을꽃의 대명사 국화 중에는 ‘마키노국화’라는 종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식물학자인 마키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금강초롱은 예전엔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이 이름은 초대 일본 공사를 지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금은 금강초롱으로 불리지만 학명(Hanabusayo asiatica)에는 여전히 ‘하나부사’가 살아있다.

저자는 “아름다운 우리 풀꽃 이름에 붙은 일본말 찌꺼기는 대대적인 수술 한 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며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