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 가정사… 극복하고 메이저 정복한 제이슨 데이

입력 2015-08-17 15:59
연합뉴스

제이슨 데이(27·호주)는 마지막 퍼팅을 앞두고 북받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 공 하나만 넣으면 꿈에 그리던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병마와 싸우다 항상 정상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지난 세월이 떠오른 듯 했다.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불의의 사고로 친척들이 한꺼번에 숨진 아픔도 기억났을 터다.

데이는 이 모든 것을 떨치고 17일(한국시간)을 그의 ‘날’로 만들었다. 데이가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파72·7514야드)에서 열린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조던 스피스(22·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워너메이커 트로피의 주인공이 된 데이는 우승상금 180만 달러(약 21억원)를 받았다.

데이는 4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20언더파로 우승한 첫 선수가 됐다. 종전 최다 언더파 우승 기록은 타이거 우즈(40·미국)가 200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세운 19언더파였다.

세계랭킹 5위인 데이는 2011년 마스터스와 US오픈, 2013년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메이저대회 10위 안에 9차례나 이름을 올렸지만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올해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에서도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분루를 삼켰었다.

특히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메이저대회를 정복한 것이어서 기쁨은 더 컸다. 그는 2010년부터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몸이 보내주는 위치 신호를 뇌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증세가 나타난다. 6월 US오픈에서도 2라운드 경기 도중 현기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지만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아픈 가정사도 우승을 값지게 했다. 데이는 12세 때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 궁핍하게 살았다. 첫 골프채는 쓰레기 더미에서 주웠고 구세군에서 옷을 구해 입었다. 어머니는 집을 팔아 아들이 골프아카데미에 다닐 수 있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2년 전에는 친척 8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아픔도 겪었다.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를 둔 데이는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 때문에 필리핀에 살던 외할머니와 외삼촌, 사촌 등 가까운 친척을 잃었다. 데이는 “사실 내가 오늘 울 줄은 몰랐다”며 “지금까지 좌절의 순간들을 경험했기에 현재에 이른 것 같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마스터스와 US오픈에 우승한 스피스는 한 시즌 메이저대회 3승이라는 대기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우즈 이후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세계랭킹 1위가 됐다. 또 2위 상금 108만 달러를 받아 시즌 상금 1039만9715달러를 모아 2009년 우즈(1050만 달러) 이후 6년 만에 상금 1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