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는 사람이든, 죽으려는 사람이든 최고 여행지는 스위스

입력 2015-08-17 10:22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여행지다.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나라’로 꼽는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의 ‘국가별 관광경쟁력 순위’(The Travel&Tourism Competitiveness Report 2015)에서도 스위스는 세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스위스의 관광 경쟁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인간답게 죽기 위해 스위스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1998년 이후 17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고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죽을 권리를 행사했다.

17일 스위스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인 디그니타스 병원에 따르면 1998년 병원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1905명이 이 병원의 지원을 받아 안락사했다. 안락사한 이들 중 스위스 거주자 156명을 제외한 다른 국적 소지자는 1749명이었다. 스위스의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 4곳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가 가능한 이 병원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수면제와 극약을 처방해 수면 중 사망할 수 있게 해준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폐암 진단을 받은 영국인 남성 밥 콜(68)은 지난 14일 이 병원에서 안락사를 택했다. 파킨슨병을 앓던 그의 부인은 18개월 전 이 병원에서 안락사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 “집에서 이렇게 안락사할 수 있어야 했다”며 영국에서도 안락사가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간호사 출신의 건강한 영국 70대 여성이 “늙는 것이 끔찍하다”며 이 병원에서 안락사를 택했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안락사와 이를 지원하는 행위가 허용돼 있지만 여전히 안락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안락사 반대론자들은 신성한 생명을 의도적으로 끊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죽음을 허용한다면 이는 자칫 취약계층 환자나 완치약이 없이 연명하는 환자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특정인을 견딜 수 없는 통증과 고통, 비참함에 몰아넣으며 추상적인 인간 존엄을 옹호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른 국가로의 원정 안락사를 떠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곳은 스위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미국 오리건주 등 5개주, 캐나다 퀘벡 등지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