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 종가에서 분실했다고 주장한 ‘장계별책’과 국립해양박물관이 공개 구입 절차를 통해 소유한 ‘충민공계초’가 동일한 책인지가 논란을 빚고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이순신 종가에서 분실했다고 주장해온 ‘장계별책’과 ‘충민공계초’는 다른 것일 수 있다고 17일 주장했다. 앞서 대전경찰청은 지난 13일 분실된 ‘장계별책’과 관련한 수사결과 발표에서 두 책이 같은 것으로 단정하고, 이순신 종가에서 유출된 ‘장계별책’을 취득한 문화재매매업자 김모(55)씨 등 4명과 이를 최종 구입한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사 백모(32)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당시 경찰은 현충사 등의 입장을 바탕으로 분실된 ‘장계별책’이 ‘충민공계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근거로 1928년 일본강점기 유리원판으로 촬영한 사진(경찰은 유리원판 속의 책을 장계별책으로 봄)과 대조한 결과, 서체는 물론 가필 부분, 그리고 얼룩까지 ‘충민공계초’와 같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유리원판 사진에서 보이는 책이 분실한 ‘장계별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근거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DB’ 사진에는 유리원판 속의 책을 ‘이순신 계초’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책 구성 내용을 놓고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물관 측은 분실 ‘장계별책’은 장계 12편과 일기 1편이 수록돼 있다고 알려졌지만, ‘충민공계초’는 장계 68편과 백사 이항복(1556∼1618년)이 이순신에 관해 쓴 ‘이통제비명’(李統制碑銘)과 ‘고통제사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 동시대 문신 박승종의 글 ‘충민사기’(忠愍祠記)가 함께 실려 있어 완전히 다른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계별책’이 장계 12편과 일기 1편으로 구성돼 있다고 기정사실로 된 것은 이충무공 전서를 국역한 이은상 선생과 ‘임진장초’를 국역한 조성도씨가 저서와 인터뷰 등에서 언급하면서 비롯됐다.
이 부분에 대해 경찰과 두 책이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일본강점기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활자화한 조선사편수회의 임진장초 해제에 장계별책에 몇 편의 장계가 수록돼 있다는 내용은 없으나 ‘장계별책에서 임진장초와 중복되지 않는 부분을 골라 12편을 수록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볼 때 장계별책에는 12편 이상 여러 편의 장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은상, 조성도씨가 장계 12편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이은상 선생이나 조성도씨가 장계별책을 실제로 확인하지 않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여러 근거와 정황상 두 책이 동일한 책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이은상의 1968년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에 보면 장계 12편과 일기 1편이 수록된 장계초고만 언급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애매한 추측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주식 국립해양박물관 운영본부장은 “경찰이 불과 3개월 남짓한 수사에서 두 책이 동일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성급한 판단으로 보인다”며 “두 책이 동일한 책인지, 아니면 다른 책인지는 학계의 신중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검찰을 거쳐 기소되더라도 재판에서는 ‘충민공계초’와 분실한 ‘장계별책’이 같은 책인지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난중일기와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92∼1594년) 당시 상황을 기록해 놓은 ‘장계별책’(표지명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은 이순신 장군이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상황보고서 68편을 모아 1662년 필사된 책이다. 충민공계초의 분량은 전체 73쪽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일한 선조 25년(1592년) 4월 15일부터 선조 27년(1594년) 4월 20일까지 작성된 전황보고서들이다. 내용은 왜적의 정세를 아뢰고 외적을 물리친 장수와 군사에게 상벌을 내리기는 청하는 것 등이 담겨 있다.
한편 이순신 장군 종가에서 문화재를 유출한 혐의(문화재보호법)로 대전경찰청에 의해 불구속 입건된 김모(55)씨 등 4명은 2007년 6월 평소 알고 지내던 덕수 이씨 15대 종부 최모(59·여)씨로부터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덕수 이씨 종가를 방문했다. 김씨는 종가에 있던 장계별책 등 고서적 112권을 충남 천안시 자신의 집으로 가져와 은닉하다가 2011년 6월 고물수집업자 조모(67)씨에게 300만원에 팔아넘겼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이 책을 문화재 매매업자 김씨 등을 통해 2013년 4월 구입했다. 박물관 측은 경찰 조사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이충무공종가 도난유물 ‘장계별책’ 진위 논란
입력 2015-08-17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