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11·25 자결(自決)의 날: 미시마 유키오와 젊은이들(2012)’. 한국 광복이 이뤄진 1945년이 아닌 쇼와 45년, 곧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왕 히로히토의 재위 45년째인 1970년. 한 남자가 죽었다. 죽음의 방법은 고래로부터 일본의 한 전통으로 굳어진 셋뿌쿠, 혹은 하라키리, 우리말로는 할복(割腹)이다. 스스로 자기 배를 갈라 죽는 방식. 그 방식도 엽기적이었지만 죽은 사람이 유명인이라 충격파가 더 컸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였으니까. 영화는 그의 자실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따라간다.
일반적으로 미시마는 ‘극우꼴통’으로 치부돼왔고 그의 자살 역시 ‘또라이짓’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그처럼 극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게 된 동기와 배경,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한마디로 미시마는 결코 ‘광인’도 ‘히스테리 환자’도 아님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놓고 미시마의 죽음에 대한 ‘미화도 비판도 아닌 객관적 묘사’라는 평도 나왔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시미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어디 네 마음대로 주장을 펼쳐보라고 멍석을 깔아준 것에 불과했다. 특히 미시마가 맨 나중 자위대 본부에 침입해 할복하기 앞서 자위대 사관들을 모아놓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는데 자위대가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장황하게 열변을 토하는 장면--“(지금의 헌법대로라면) 자위대는 국군이 될 수 없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용병일 수밖에 없다”, “헌법이 여러분(자위대)의 존재를 부인하는데 여러분은 왜 가만히 있는가”--은 그 백미다. 이 부분은 나아가 와카마쓰 코지 감독이 미시마의 입을 빌려 일본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털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오버 아니냐고?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출구 없는 바다(2006)’와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2007)’. 2차대전 말 일본이 최후의 발악으로 각각 바다와 하늘에서 자살 특공대(독코다이)로 내보낸 가이텐(回天)과 가미카제(神風)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일부의 지적대로 군국주의 찬가가 아니라 오히려 ‘반전(反戰)’과 ‘휴머니즘’을 그리려했다는 평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와 군국 일본이라는 국가, 또는 ‘일본적인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짙게 배어있는 영화였다.
이런 류의 영화는 실사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아니메의 천국’답게 애니메이션도 있다. ‘일본의 월트 디즈니’ ‘일본 아니메의 신’으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바람이 분다(2013)’. 2차대전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군림했던 일본군의 제로센(零戰, 미쓰비시 A6M). 그 전투기를 개발한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와 그가 제로를 개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은 멋진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인간의 꿈’과 결핵에 걸려 숨진 호리코시 부인과 호리코시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군사대국으로서 당시 세계 최고의 해군력과 최강의 전투기를 갖추고 세계를 호령했던 옛 일본에 대한 향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영화에서 호리코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살상용 전투기가 될 줄 몰랐던 것처럼 굴지만 그가 설계에 고심했던 부분이 항공모함 탑재기의 성능에 관한 것이었던 사실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그런 거짓말도 없다.
이런 일본의 몇몇 영화를 보면서 한숨 짓다보니 이번엔 무늬만 ‘전승국’ 중국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최근 쏟아져 나온 중국영화들은 하나같이 ‘중화제일주의’에 더해 ‘중국 공산당 최고’ 거기에 ‘중화 패권주의’로 떡칠한, 이른바 ‘국뽕’ 영화 천지였기에 혹시 그런 추세가 바뀌었는지, 여전한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본 중국영화들은 ‘역시나’였다. 영화적 완성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덩치 커진 중국 경제를 자랑하듯 물량공세를 퍼부어 만들어낸 이른바 중국판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중국 찬가’를 제외하면 영화적 측면에서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영화들이 중국 국내나 중화권에서 흥행 톱을 달리고 있다고 한다.
하긴 중국의 국뽕 영화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워낙 자본주의화돼 있어 사람들이 가끔 잊어먹지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고 공산주의는 영화를 오로지 선전 선동 매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냄새가 풀풀 나는 ‘건국대업(2009)’과 ‘건당위업(2011)’은 아예 내놓고 뛰니 제쳐놓자. 겉으로는 오락영화인 척 하면서 까놓고 보면 ‘중국(군) 최고’ ‘중국 공산당 짱’으로 점철된 영화들이 태반이다. 중국군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우애 있고 인정 많은 군대로 그리고 있는 ‘집결호(2007)’와 ‘전랑(戰狼 2014)’ 같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홍콩의 대표적인 오락영화 감독으로 소문난 서극(徐克)까지 데려다 겉으로는 오락활극이지만 실제로는 중국군 홍보영화에 불과한 ‘타이거 마운틴(2014)’을 만드는가 하면 성룡과 미국의 유명배우 애드리언 브로디, 존 큐색울 동원한 영화(‘드래곤 블레이드’ 2015)마저 역사물의 외피를 씌워 중국 찬가를 부르고 있다.
물론 일본이 일본과 일본군을, 중국이 중국이라는 나라와 군대, 체제(공산당)를 찬양하는 거야 누가 뭐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자위(自慰)나 자기 찬양에 그치지 않고 잘못된 과거를 재현하려 한다거나 다른 나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폄훼하고 배척하고 억누르려는데 있다. 예컨대 ‘집결호’의 경우 주인공들인 중국군 부대는 국공내전에서 국민당군대와 영웅적으로 싸워 이긴 뒤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에 파견된다. 6·25전쟁에 불법 참전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멋진 모습으로 ‘오합지졸’ 미군과 한국군을 깔보고 놀리며 격멸한다. ‘영웅적인 중국공산군 만세’이고 ‘미군과 한국군은 엿이나 먹으라’는 것인데 영화를 보면 그런 의식은 6·25때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저런 일본 영화들에서 보듯 일본의 보수우경화, 보통국가화, 나아가 군사대국화에 우려의 시선을 던지지만 나는 중국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중화 패권주의(모든 것은 중국이 중심이고 주변 국가들은 방번(防蕃)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위해 거의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듯한 중국의 모습은 섬뜩하다. 일본은 한국을 겨우 30여년간 지배했지만 중국은 동북아 패권을 놓고 자웅을 다퉜던 고구려시대를 제외하고 수천년 동안 한국을 속박하고 수탈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서대문 밖 독립문이 구한말 일본에 대한 독립을 염원해 세워진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조선시대 내내 중국 사신을 맞던 치욕스런 영은문(迎恩門 은혜를 맞아들이는 문) 자리에 들어선 기념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도 ‘진보'요 뭐요 하면서 잘난 척 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고 ’국뽕‘ 소리 들을 만한 영화들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일본과 중국이 그러니까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인들만 유독 한국만 ’대인배‘연할 필요가 어디 있나.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