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무협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니고…②

입력 2015-08-16 06:00 수정 2015-08-16 13:23
영화 ‘협녀, 칼의 기억’ 포스터

*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편
에서는 무협 영화로서 ‘협녀 : 칼의 기억’(‘협녀’)의 아쉬웠던 점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박흥식 감독이 강조했던 ‘협녀’ 속 로맨스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감독이 감정 전달의 도구로 썼다던 액션이 모자라서인지는 몰라도, 보는 이들을 이해시킬 만큼의 로맨스가 운반되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질문2. ‘협녀’는 로맨스인가?

이 영화의 기본적 정서는 슬픔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비장미와는 다릅니다. ‘협녀’의 비애란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개인의 선택에서 오기 때문이죠. 극 중 인물들의 행동에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가 특별히 더 필요한 까닭입니다. 갚을 필요 없는 원수를 갚겠다고 복수극을 펼치는 인물에게 무슨 수로 감정을 이입하겠습니까. ‘협녀’가 그렇습니다. ‘협(俠)’도, 가족애도, 동료애도, 심지어는 로맨스조차 영화 속 캐릭터들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협녀’의 로맨스는 시점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과거의 사랑은 월소(전도연 분)와 유백(이병헌 분)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홍이(김고은 분)와 율(이준호 분)의 로맨스는 현재 진행형이죠. 우선 현재의 로맨스를 보겠습니다.

홍이 캐릭터에 왈패 이미지를 이식하기 위해 전형적인 장면들이 쓰였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고수로 거듭나려면 저잣거리를 들쑤시고 민폐를 끼치는 악동이 돼야 한다는 설정은 이제 그만 보고도 싶지만 넘어가도록 합니다. 그러던 홍이가 좌판에 펼쳐진 장신구에 슬쩍 눈길을 줍니다. 홍이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봅니다. 무공을 뽐내는 율을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을 뺏기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홍이와 율의 핑크빛 무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둘의 로맨스는 ‘썸’ 선에서 멈춥니다. 이를테면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나 투닥거리다가 정이 드는 새내기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홍이는 갑자기 대련장에 들이닥쳐 율과 겨루다가 유백에게 쫓기게 되며 자취를 감춥니다. 이후 어떤 사연 때문에 가출한 홍이를 술집에서 만난 율은 “이번엔 승부를 내야지?”라며 잠깐 살기를 드러냅니다. ‘용문비갑’의 주점 액션 비슷한 것이라도 나올 줄 알았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앉아 대작을 벌입니다. 홍이는 술을 들이붓고, 율은 이를 한심하게 바라보지만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어려 있죠. 율은 취한 홍을 업고 집에 데려가고, 그의 몸을 씻어주다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뻔해 뻔뻔해 보일 정도지만 상큼함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쓸모는 없는 로맨스입니다.

홍이와 율은 서로 야릇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아주 이상한 운명(?)에 의해 서로 칼을 겨누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맞붙음에서 애틋함이나 비탄이 느껴지지는 않죠. 당연합니다. 두 사람은 평생의 연인도, 일생의 맞수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둘의 로맨스는 의례적으로 던졌으나 회수되지 못한 떡밥 같다는 인상입니다. ‘협녀’의 율은 기교 없는 담백한 연기로 주연급인 김고은보다도 돋보였던 이준호 덕에 살아난 역할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에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할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졌는지도 모르지만요.

감독의 의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홍이와 율의 로맨스는 이쯤에서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라 느껴집니다. 월소와 유백, 두 사람에게 얽힌 서사만 정리하려 해도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 몹시 빠듯할 것 같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는 총 네 번의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옵니다. 주요 서사가 여러 개다 보니 이를 자연스럽게 한데로 모으려면 이 같이 지나치게 설명적인 연출이 가미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를 있게 한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쉬운 방법을 택하다 보니 그런 듯도 합니다. 시쳇말로는 참견 쟁이 스피드왜건(일본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상황 설명을 하는 캐릭터)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고나 할까요.

영화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넘쳐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물줄기, 저 물줄기를 끌어다 붙이니 강이 범람합니다. 감독은 드라마의 밀도와 점도를 강화했다고 말했지만 그저 드라마의 수가 많을 뿐이었죠. 로맨스가 쌓이기에는 유백의 야심, 부패한 무신정권과 민란, 월소의 정의, 홍이의 성장 등 풀어 나가야 할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저 동굴 속 하룻밤을 보냈다고 설명될 월소와 유백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넌 나를 버릴 수 없어. 넌 날 잊을 수 없어” 같은 치명적인 대사들이 나와도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그 확신은 대체 뭐였을까요.

특히 이 영화에서는 기사에서 밝힐 수 없는 갈등 해소를 위해 애먼 사람이 출생과 동시에 희생자가 됩니다. 이 희생자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된 후에도, 본인과 관계없이 꼬여 있는 매듭을 스스로 풀겠다며 나섭니다. 어떤 피할 수 없는 사정도 없는데 ‘결자’는 ‘해지’하지 않습니다. 희생자의 선택에 드는 의아함은 ‘나 같으면 안 그럴 텐데’ 수준이 아닙니다. 또 이 갈등을 초래한 인물은 ‘사사로움을 끊어내는 협’을 위해 ‘더러운 목숨을 연명하며’ 희생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옳은 것은 모두에게 옳다’면서요. 결국 뭐가 옳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고집 때문에 영화 속 협은 더 이상 협이 아니게 되고, 로맨스도 끝내 로맨스로 남지 않습니다.

무협이자 멜로인 영화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무협이면 무협, 멜로면 멜로로 장르의 경계가 분명히 나뉘는 영화가 드물죠. 그러나 무협과 로맨스를 동시에 보여줄 것 같았던 ‘협녀’는 두 장르의 미덕을 모두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써 배우들의 호연을 기대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장면에서든 촉촉하게 젖어 있는 배우 이병헌의 눈이었네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