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14일 전후 70년 담화(아베담화)가 기대수준을 충족하기에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향후 한일관계 향배가 주목된다.
아베 총리는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大戰)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면서 '과거형' 반성과 사죄에 그쳤다.
또 "사변, 침략, 전쟁. 어떤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더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식민지배로부터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받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침략과 식민지배를 언급하면서도 과거 제국주의 일본을 주체로 명시하는 것을 회피했다.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와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면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분명히 표시한 무라야마 담화나 고이즈미 담화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과거형 사죄에 이어서 "그 생각(반성과 사죄)을 실제로 행동으로 나타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의 나라들,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인 아시아 사람들이 걸어왔던 고난의 역사를 마음으로 새기며 전후 일관했다는 그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성이 떨어지고,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우리 정부의 '확실한 계승' 요구를 충족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여러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와 고통", "단장(장이 끊어지는)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등의 표현으로 나름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새로운 도발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교묘한 화법으로 일관해 진정성 있는 사죄에는 크게 미흡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공식입장을 어떻게 낼지를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베담화 내용을 면밀히 검토 중이며, 이에 대한 우리 입장이나 평가는 조만간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담화 하루 뒤인 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담화와 대일기조를 어떻게 담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 내에서는 "걱정했던 수준보다는 낳은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정부로서는 침략과 식민지배, 사죄와 반성이라는 4개 키워드와 "역내 대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표현이 담겼고, 아베 총리가 그동안 언급해왔던 '전체적으로 계승'이라는 문구가 빠진 점 등에서 다소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어정쩡한 사죄", "교묘한 책임 회피"이라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 데 이어 아베 담화가 향후 양국관계의 선순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아베 담화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고, 이렇게 되면 한일관계의 본격적인 개선을 위한 시동에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아베 총리가 과거형 사과를 했음에도 2차대전 종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에 대해서는 "인구의 80%를 넘는 이들은 그 전쟁과 어떤 관계도 없다"며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된다"고 말한 것도 적지 않은 역풍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다만 아베 총리가 새로운 도발을 한 수준은 아닌 만큼 관계개선 분위기가 급격히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아베담화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도 한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올바른 역사인식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며 관계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중일간 관계개선 가능성 등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지속된 경색은 자칫 한국의 외교고립론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역시 한미일 삼각공조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상황이며, 오는 10월16일 한미 정상회담도 앞두고 있다.
일본 측이 담화 발표 전에 외교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문안을 사전에 전달하고, 담화 발표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 윤병세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베 총리가 언급한 바와 같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이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점이 향후 우리 정부의 대응과 한일관계 향배와 관련해 주목된다.
일본 정부가 나름대로 아베담화 전후로 한국정부에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그동안 중국 측의 유보적 입장 등으로 지연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담화와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 이후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 없는 관계정상화'라는 평가를 받아온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한일 정상회담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아베담화 여론 살피며 관계 개선 모색” 연내 한일정상회담 추진 명분 쌓을듯
입력 2015-08-14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