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경부선 개통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근대화가 출발한 ‘사건’이었다. 경부철도는 강점기 때 수탈을 지원하는 근대의 첨병이기도 했다. 철도가 3년 4개월의 공사 끝에 개통되자 기관차는 승리를 자축하듯 일장기로 치장됐다.
경부선이 개통된 그해 일본인 화가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철도 연변의 풍경을 그린 화첩이 13일 공개됐다.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소장한 이 화첩은 1905년 경부선 개통 축하행사에 초청받은 노가쿠(일본의 전통 공연 악극) 공연단과 함께 했던 교토 출신 화가 다다 고츄(多田香疇, 1873∼?)가 채색화로 그린 것이다. 노가쿠 공연단은 그해 5월 18일 교토를 출발해 25, 26일 남대문 앞에서 축하 공연을 했고 같은 달 28일 부산에서 귀국했다.
‘조선 명치 38년(1905년)’이라는 제목이 적힌 화첩은 가로 20.7㎝, 세로 29.7㎝ 크기로 안에는 길이가 다른 27점(최장 75㎝)의 그림을 아코디언처럼 접이식으로 장정했다. 제작 배경을 밝힌 서문에 이어 첫 그림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출항하는 일행이 탄 배로 장식했다. 부산, 삼량진, 밀양, 청도, 대구, 추풍령, 옥천 등 상행선의 경로를 따라 역 주변 산과 농촌 마을 풍광을 담았다. 서울 광화문과 일진회의 제등행렬, 인천항 모습도 있다. 일행이 경인선을 이용해 인천 관광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첩에선 기차라는 근대문명을 선물한 일본의 득의에 찬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4점이나 그린 부산 장면이 그렇다. 초가집으로 점철된 한국 산하와 달리 일본인의 부산 조계지는 마을 전체가 기와집이다. 이·삼층집과 전봇대가 있는 가운데 일장기가 선명하다. 열차 내 양식당과 일식 도시락을 그린 것도 눈길을 끈다.
맨 마지막 그림 ‘조선 토산-조선국기’에는 부채, 곰방대, 짚신과 태극기를 그려 넣어 화첩 첫 그림의 일장기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화가 다다 고츄는 교토화파의 대부격인 고노 바이레이(幸野?嶺, 1844∼1895)의 문하생이다. 강민기 홍익대 초빙교수는 “러일전쟁 이긴 1905년 이후 일본인의 이주가 본격화됐고 일본인 화가들이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경우도 생겨났다”면서 “당시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여 사료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화첩은 일제 강점기에 본격화된 철도를 이용한 근대관광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일본 단체관광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수요를 겨냥해 식민지 한국의 주요 관광지와 경승지 풍광을 담은 접이식 화첩이 유행했다. 강 교수는 “다다 고츄가 1930년대까지 조선 관광지의 풍광 화첩을 다수 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단독]1905년 경부철도 개통 때 철도역 주변 풍광 담은 일본인 화첩 공개
입력 2015-08-13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