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 1]사랑할 때와 죽을 때

입력 2015-08-13 16:09

사랑할 때와 죽을 때/원희복/공명



얼마나 많은 항일투사들이 아직도 역사의 지층 아래 묻혀있는 것일까? 언제쯤 누가 사진 한 장, 이름 한 자 남기지 못 한 채 죽은 그들의 생애를 수습해 우리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할 것인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어나가는 동안 내내 가슴을 짓눌렀던 생각들이다. 이 책은 1939년 서른도 못 살고 중국 땅에서 총살형을 당한 항일투사 김찬을 그의 중국인 아내 도개손과 함께 사후 76년 만에 불러낸다. 10년 전 중국 취재에서 김찬 이야기를 처음 접한 현직 신문기자 원희복씨가 오랜 시간을 들여 그의 생애를 복원해 냈다.

김찬은 1930년대 혁명적 노동운동을 통해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던 청년이다. 1911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가족과 중국으로 이주했고, 18세에 상해의 조선공산당에 가입할 정도로 열정적인 혁명가였다.

20대 내내 조선의 진남포와 경성, 중국의 상해와 북경, 하얼빈을 넘나들면서 주로 국내 노동조합 재건 운동을 펼쳤던 그는 1932년 체포된다. 1933년 6월 2일자 동아일보는 ‘조선 당 재건을 획책, 공산주의의 3거두 홍남표, 조봉암, 김찬 래역(來歷)과 그 활동경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세 사람의 사진과 같이 전면으로 보도했다.

1930년대 조선에서 노동운동가로서 김찬의 역할은 컸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이름을 우리 독립운동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출옥 후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데다 그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가 2005년 중국에서 김찬의 아들 김연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김찬이라는 항일투사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일흔이 넘은 나이였던 김연상은 부모의 중국 활동 기록을 수집해 놓고 있었다. 조선 활동 기록은 저자가 채워 넣은 것이다.

김찬은 중국에서 도개손과 결혼을 하고 자식 둘을 낳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중앙의 소재지였던 연안으로 찾아갔다가 당시의 정풍운동 바람에 일제의 간첩으로 몰려 허무하게 생을 마치고 만다.

책은 김찬의 개인 평전이 아니라 김찬·도개손을 나란히 다룬 부부 평전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도개손이다. 중국 명문가 자녀로 북경대 최초의 여성 이과대학생이었던 도개손은 항일투쟁에서 김찬과 대등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남편을 버리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가족의 제안을 거부하고 남편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

“나는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없어요. 나와 그 사람에 대한 죄상이 진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나와 그 사람에 대한 진실이 조작된 이상, 나만 조작된 거짓에서 빠져나올 순 없어요. 이것은 그이와의 사랑 이전에 진실을 위한 싸움 문제예요.”

사후 43년 만인 지난 1982년 중국공산당은 부부에게 내려진 과거 판결이 잘못됐다며 복권 결정을 내렸다. 도개손이 죽음으로 지킨 진실이 뒤늦게나마 명예 회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부부가 항일투쟁에 헌신한 사례가 없진 않지만, 한중 커플은 이례적이고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한 경우는 김찬·도개손 부부가 유일하다. 역사학자 이덕일도 추천사에 “김찬·도개손의 삶이 다른 사회주의 혁명가 부부와 달랐던 점은 죽음까지도 함께 했다는 점”이라고 썼다.

김찬과 도개손은 각각 28세, 27세로 너무나 짧은 삶을 살다 갔다. 자신들이 신봉하던 당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고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중국 연안의 계곡에서 죽은 둘의 시신은 물론 무덤도 확인할 수 없다.

아들 김연상씨도 최근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자는 “(생전에) 김연상은 한국 정부에서 아버지 김찬에 대한 서훈을 해줄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찬의 서훈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김찬의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북한에 사촌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들의 생애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조차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항일투사들을 찾아내 기념하는 일을 중단해선 안 될 이유가 여기 있다. 어찌 김찬·도개손 뿐이겠는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