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이 12일(현지시간) 차기 당수를 선출하기 위한 유권자 등록을 마감하고 공식 선거일정을 시작한 가운데 현재 지지율 1위로 돌풍을 일으키는 ‘골수 좌파’ 제러미 코빈(66) 의원에 대한 당내 견제가 본격화됐다. 특히 1994~2007년 중도 노선으로 당을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코빈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우리가 충분히 좌파적이지 못해서 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아니다”면서 “코빈같은 1980년대식 구호로는 국민 전체의 지지를 얻지 못하며 정권도 탈환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빈이 당선되면 아예 당이 절멸하게 될 것”이라며 “당원들은 눈을 감고 절벽을 향해 걸어가지 말고 코빈에게 강한 럭비 태클을 걸어달라”고 주문했다.
블레어는 지난 달에도 코빈을 겨냥해 “노동당은 좌파가 아닌 중도 노선으로 나아가야 승리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블레어의 이런 주장에 대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판세를 뒤흔들기 위한 드라마틱한 막판 개입”이라고 해석했다.
당내 중도계에서는 유권자 등록 마감 때 코빈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동당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거 등록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노동당은 투표 참여 신청자 가운데 1200명이 다른 당 지지자로 밝혀져 유권자 등록을 거부했다. 중도계 일각에서는 가짜 지지자가 더 있을 것이라면서 ‘선거 무효론’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빈을 제외한 다른 세 후보인 앤디 번햄(45) 의원, 이베트 쿠퍼(46·여) 의원, 리즈 켄달(44·여) 의원도 당에 서한을 보내 “선거가 코빈에 유리하도록 불공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의 지지도 조사 결과, 현재 판세는 코빈의 지지율이 53%로 압도적 1위다. 이어 번햄 의원(21%), 쿠퍼 의원(18%), 켄달 의원(8%)이 뒤따르고 있지만 워낙 격차가 커 역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빈의 인기 비결은 강력한 좌파적 공약 때문이다. 코빈은 보수당 정부의 재정 긴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물론 100억 파운드(약 18조원)를 조성해 대학 수업료를 면제하고 서민층 가정의 대학생에게 생활지원금도 주겠다고 발표했다. 또 전기, 가스 사업자들에 대한 공적 통제 강화와 철도 국유화도 공약했다.
전기기사의 아들인 코빈은 전국공무원노조(NUPE)의 상임 활동가로 일한 노조 출신 인사로 1983년부터 20년 넘게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블레어 등 영국 노동당 중도계, 코빈 죽이기 본격화
입력 2015-08-13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