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이 죽는다면 슬프할 것이 없겠다” - 독립투사 부친이 쓴 절절한 제문

입력 2015-08-13 14:52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 홈페이지

“만약 너 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겠다.”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로 일경에 체포돼 37세에 처형된 고헌(固軒) 박상진(1884∼1921) 의사의 아버지 박시규옹이 1923년 아들의 2주기를 맞아 쓴 제문 ‘제망자상진문(祭亡子尙鎭文)’이 13일 울산박물관에 전시됐다.

제문에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먼저 떠나간 데 대한 원망,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과 부정 등이 절절히 표현돼 있다.

“나는 네가 살았을 때에는 너의 인망이 이와 같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어도 그 시대에 아무 이익이 없고, 죽은 뒤에도 후세에 남길 만한 소문이 없이 그냥 왔다가 그냥 가게 됨은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일이지만, 만약 너 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다 하겠다.”

박옹은 아들의 의로운 죽음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으면서 포기해야 했던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 그로 말미암아 가족이 처한 열악한 현실 등도 적었다.

“나는 네 나이 40세에 이르도록 왜 가정을 돌볼 생각이 없었는지, 그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원망스럽기만 하다. 늙은 부모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어린 처자들도 걱정하지 않았느냐. 일곱 식구가 먹고사는 농토를 아무 까닭 없이 넘겨주었으니….”

아버지는 아들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와 애절한 애정으로 제문을 끝맺었다.

“인간 세상에서 한 번 작별한 것은 순식간에 불과할 뿐이니 지하에서 만나게 됨은 장차 한이 없을 것이다. 이 제문은 내가 너에게 이별을 말하는 바요, (제사상의) 이 술과 음식은 오직 내가 너에게 먹고 마시도록 권하는 바이다. 너는 감격스레 여기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흠향(신명이 제물을 받아서 먹음)하기 바란다. 가슴 아프다.”

고헌은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그는 1910년 판사등용시험에 합격해 평양지원으로 발령이 났으나 ‘재판은 일본인에 의해 독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낫다’며 부임을 거절했다.

이후 1915년 대구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으로 추대돼 경주 우편마차 세금 탈취, 길림 광복회 설립, 친일파 처단 등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대한광복회는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일경에 밀고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의열 투쟁을 전개했다.

울산박물관은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광복, 다시 찾은 빛’을 10월 11일까지 개최한다.

고헌의 활동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 독립운동가 활동상과 유품,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과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 관련 자료, 울산지역의 만세운동 등을 전시한다.

22일에는 광복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광복회와 박상진 의사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도 열린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