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아버지 노릇 하기란 정말 힘들다. 자식들은 “잘못된 일은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공부를 못하는 아들에게 “너 왜 성적이 그 모양이냐”고 하면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잘된 것은 자신 덕이고 잘못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란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빌딩이라도 남겨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내가 이 모양”이라고 말하는 젊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어떤 친구는 조상 탓도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말죽거리에서 농사라도 지었으면 지금쯤 나는 부자가 되었을 텐데”라고 농담을 한다.
취직하기가 쉽지 않고 신분 상승이 너무 힘들어 젊은 사람들이 푸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인들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 벌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점점 직장 내 위치가 불안해진다. 그런데 가정에서 요구하는 사항은 많아지고 탈출구는 없다. 정말 답답하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일하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중년층 아버지들은 한숨을 쉰다. 가정에서도 돈만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한 기분이란다. 지갑에는 몇 만 원의 현금도 없을 때가 많다.
얼마 전 회사에서 여름 휴가비를 지급했을 때, 한 임원이 어느 통장으로 돈을 부쳤는지 내게 물었다. 왜 묻느냐고 물어보니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라고 답한다. 휴가비가 급여 통장으로 들어가면 아내의 돈이 된다고 한다. 휴가비만큼은 온전히 챙겨 폼 한번 잡아보고 싶다고 한다. 그게 요즘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약한 우리 아버지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잘된 것은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하는 자식이 정말 부럽다.
기독교 관련 방송 중 신앙간증 프로그램이 많다. 몇몇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내용의 간증을 쉽게 볼 수 있다.
“저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 봉사했습니다. 주일성수 잘 하고 십일조 잘 내며 믿음 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별안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고 아이도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들었죠.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만약 남편과 아이를 완치시켜 주지 않으신다면, 이제부터 교회도 안 나가고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기적적으로 남편과 아이가 완치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 권사로서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신앙 간증을 자주 접한다.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는 경제적인 축복도 주신다. 또한 건강의 축복도 주신다.
그런데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이런 물질적 축복이나 다급한 건강 문제 때문에 믿기 시작해 병이 완치되거나 경제적 풍요를 얻고 나서 신앙생활을 잘 이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십일조보다 더 많은 십이조도 드리고, 더 큰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감사헌금을 더 드리면 더 큰 복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많다.
과연 이것이 신앙의 전부일까? 복 받기 위해 기도하고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만 하는 신앙생활이 신앙의 전부라면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축복의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나에게서 물질이 떠나고 건강이 떠나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를 원하지는 않는지. 하나님께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종으로서, 목적대로 쓰임 받기를 위해 나 스스로 운동과 건강관리를 했는지 생각해 보자.
목적대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영혼도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육체도 건강히 잘 관리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주시옵소서”라고 구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오늘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하루가 이어지기를 기도해 보자.
내 기도의 단계가 좀 더 높아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을 받는 것에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신앙 단계로 가고 싶다. 이것이 성화의 단계라고 신학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의화 단계의 신앙에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는 삶을 살고 싶다.
삶이 거룩한 제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단계까지 신앙생활을 올려보고 싶다. 참으로 힘든 단계지만 노력하면 조금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성화의 단계로 가는 성도들이 주변에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해 본다.
[강덕영 장로 칼럼-약한 아버지와 성숙한 신앙인]
입력 2015-08-13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