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협녀 : 칼의 기억’(‘협녀’)이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이미 1년 가까이 개봉이 미뤄진 터라 더는 물러설 수 없었겠죠. 극장가 최대 성수기에 개봉 시기를 맞춘 대신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에 ‘암살’ ‘베테랑’까지 쟁쟁한 화제작들과 정면으로 맞붙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완성도를 본 후에는… 글쎄요, 이 같은 과감한 행보에 물음표가 찍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박흥식 감독은 ‘협녀’를 “무협이라 생각지 않고 로맨스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 속 액션은 감정을 운반하는 역할이었다고 말했는데요. 여자 협객을 일컫는 ‘협녀’를 굳이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무협영화계의 전설 격으로 추앙 받고 있는 동명의 작품이 있기 때문에 장르적 부담감이 컸을 텐데 말이죠.
무협과 애써 선을 긋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협녀’의 액션은 몹시 빈약합니다. 또 로맨스라기엔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도무지 따라가기 힘드네요. 이 영화 안에서 융화되지도, 나름의 미덕을 발휘하지도 못했던 두 장르의 특성을 위주로 ‘협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질문1. ‘협녀’는 무협인가?
‘협녀’의 배경은 여느 무협 영화들이 그러하듯 ‘난세’입니다. 칼이 곧 권력이었고, 천민도 왕이 될 수 있던 혼돈의 고려 말 세 검객의 이야기를 담았죠. 또 시작과 동시에 민란, 차(茶), 칼 등 무협물 속에서 ‘그림이 되는’ 소재들을 언급합니다.
꼭 이 장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도 많이 나옵니다. 대나무밭과 빗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을 보고 ‘와호장룡’이나 ‘영웅’이 떠오르는 것을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길 필요는 없습니다. ‘동사서독’스러운 선문답과 ‘일대종사’ 느낌의 시퀀스까지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게 문제가 되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21세기 서부영화 속 보안관과 악당이 황야에서 대결한다고 해서 이를 ‘하이눈’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죠. 그야말로 ‘장르적 특성’입니다. ‘협녀’가 ‘와호장룡’ 만큼 예술적인 대나무밭 액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잘못이라 하겠습니까.
문제는 액션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모종의 정의를 뜻하는 ‘협’은 무협물에서 빠져도 좋을지 모릅니다. 때로는 악당이 영웅보다 훨씬 멋진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기서 ‘무(武)’만은 결코 빠져서는 안 됩니다. 땅에 발을 붙인 채 펼치는 현실적 액션이든, 와이어를 달고 대숲을 가르는 환상적 액션이든 ‘무가 없는 무협’이란 이미 어불성설입니다. ‘협녀’에 칼은 있습니다. 그러나 ‘무’가 있다기엔 애매합니다.
‘협녀’의 전체적인 액션 톤을 결정하는 장면은 홍이(김고은 분)의 발끝에서 터졌습니다. 해바라기 밭에서 물을 주던 홍이가 키의 열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해바라기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공중을 훌쩍 날아 뛰어 넘습니다. 최근에는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의 박보영이 멀리뛰기를 하는 장면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도 같네요. 어쨌든 이로서 이 영화는 다소 비현실적인 액션을 하더라도 영상미에 치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몸이나 움직이고 있는 전경을 비추는 대신 그들의 얼굴, 표정에 집중하며 액션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배우들의 표정에 잔뜩 실린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액션을 둔탁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또 와이어에 매달린 몸이 가볍게 날고 있는 와중에도 베기, 찌르기, 겨누기 외의 동작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를 ‘절제’라 한다면 과도합니다. ‘풍진삼협’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문파이지만 고유의 검법 같은 것은 갖추고 있지 않은 모양이네요. 홍이가 마지막 복수를 위해 월소(전도연 분)와 유백(이병헌 분)의 스승(이경영 분)으로부터 무공을 배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이는 5분 만에 급성장했지만 그 근거는 관객들의 상상에 맡겨 두죠. 그래서 월소나 홍이는 ‘주입식 고수’ 같다는 인상까지 줍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 두 사람 이상의 칼이 겨우 몇 합을 맞붙는 동안 카메라는 자꾸 다른 공간의 인물에게 다녀옵니다. 무림 고수들의 몸놀림을 진득하게 감상할 겨를이 없습니다. 액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컷들이 바쁘게 삽입되며 마치 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저속 촬영과 고속 촬영이 번갈아 이뤄지며 딱히 귀에 꽂히지 않는 무난한 음악도 화면 위를 겉도는 순간이 목격됩니다. 액션 장면의 배경 음악은 빠른 호흡으로 쭉 내달리는데,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외려 속도감이 어긋나는 것입니다.
빗속과 눈 속에서 벌어지는 주요 대결 장면에서는 빗방울과 눈송이의 결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시간이 매우 느리게 움직입니다. 잠깐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슬로우 모션을 오래, 많이 걸수록 지루해집니다. 화면을 덮어놓고 느리게 연출한다 해서 반드시 정물화 같은 감각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협녀’는 내용적 측면을 차치하고라도 무협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을 다소 안일하게 다뤘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이쯤 되면 ‘협녀’가 스스로를 무협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애매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협녀는’ 로맨스 영화일까요? 2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협녀’, 무협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니고…①
입력 2015-08-13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