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나섰던 헐버트 선교사 추모식

입력 2015-08-12 16:51 수정 2015-08-12 16:59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항일운동에 적극 나섰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의 서거 66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12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백주년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가 주최한 추모식에는 교계와 정·관계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동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헐버트 박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건국공로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모두 받은 유일한 인물인데도 많은 국민이 헐버트 박사의 업적을 알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회장은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을사늑약 110년이 되는 해”라며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헐버트 박사의 피 맺힌 눈물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86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헐버트 박사는 23세이던 1886년 내한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에 힘썼다. 일제 만행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1907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헐버트 박사는 1949년 7월 29일 다시 돌아와 며칠 뒤인 8월 5일 별세했으며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원에 따라 양화진에 묻혔다.

추모식에서 특별 강연을 한 호프 메이 미국 센트럴미시건대 교수는 “같은 미국인으로서 헐버트 박사의 영웅적 행동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며 “헐버트 박사가 남긴 정신과 삶, 그리고 신앙의 유산을 앞으로도 계속 공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헐버트 박사가 별세했을 때 국내 언론들이 그의 업적을 어떻게 기록했는지를 볼 수 있는 기사들도 공개됐다.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1870~1917) 등 3명을 파견할 때 헐버트 박사가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 알 수 있는 보도들이다. 헐버트 박사는 당시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벌여 그동안 ‘제4의 특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6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발자취는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헐버트 박사의 영전에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