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기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박 의원 체포동의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지만 박 의원의 옛 '친정'인 새정치연합이 의사일정 협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자칫 표결 시한(72시간)인 14일을 넘겨 자동 폐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표면적으로는 새누리당의 과거 여야 합의 미이행을 이유로 본회의 일정 합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언주 원내 대변인은 "새정치연합은 지난 5~7월 새누리당과 합의한 사항을 다 이행했지만 새누리당은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의사일정은 새누리당의 합의 이행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문제삼는 부분은 국가정보원 해킹의혹 진상규명에 필요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점,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관련한 사회적 대타협기구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점, 성완종 불법자금 특별검사 및 탄저균 불법반입 국정조사, 메르스 대응 실패 국정조사 제안을 외면한 점 등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이런 입장은 의사일정 협의를 핑계로 사실상 '박기춘 구하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새정치연합이 체포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 일정에 아예 합의하지 않거나, 일정을 잡더라도 본회의 불참을 통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자동 부결되도록 유도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이런 기류는 박 의원의 구명운동과 당내 동정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박 의원은 전날 20대 총선 불출마 및 탈당을 선언한 데 이어 당 소속 의원들과 접촉해 불구속 수사를 받게해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선 의원은 "불출마에다 탈당까지 했기 때문에 당에서도 본회의 일정 잡기가 곤혹스러운 것같다. 참 괴롭다"고 토로했다.
원내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방탄국회'를 한다고 욕을 먹어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김기식 의원이 "큰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취지로 표결 처리의 불가피성을 거론했을 뿐, 다른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정치연합에서는 "당 지도부와 논의를 통해 심사숙고해 지혜롭게 결정하겠다"(이종걸 원내대표), "명쾌한 답변을 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식의 애매한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도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지난 7일 "당이 방탄 역할을 해선 안된다"며 원칙적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이날은 "원내 대표단에서 하는 것이니까 두고봐야죠"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체포동의안을 원칙대로 표결 처리해야 한다는 방침 하에 13일 오후 2시 본회의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내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하는데 14일이 임시공휴일임을 감안하면 13일 표결이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방탄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높다"며 "문재인 대표도 비호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 만큼 야당도 본회의 일정 합의에 적극 나서주고 표결에 당당히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13일까지 야당이 본회의 개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해서라도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회의 일정이 잡히더라도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힘든 형편이다.
체포동의안 가결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과반수 출석, 재석의원의 과반수 찬성'이지만 여름 휴가철이란 계절적 특성상 정족수 부족이 발생할 수 있는데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도 박 의원 동정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말로만 방탄국회 안한다?” 野, 박기춘 체포동의안 처리 미적미적
입력 2015-08-11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