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베담화 관련 첫 외교부 대변인 성명 통해 압박전 전개

입력 2015-08-10 17:32

오는 1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를 앞두고 정부가 10일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지난 6월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불씨를 살려놓은 관계개선 분위기가 다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아베 총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담화 발표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의미있는 계기에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확실히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려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민주당 대표를 접견한 자리에서 "전후 70년 계기에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담화'가 역대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재확인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미래로 향하는 데 큰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지 1주일 만에 '역대 내각 역사인식의 확실한 계승'을 거듭 촉구한 것이다.

정부도 이날 이례적으로 '전후 70주년 아베 총리 담화 관련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성명에서 "총리 담화에서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고자 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의 일본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이해 양국관계 발전의 근간이 되어온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 고노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할 것임을 누차에 걸쳐 공언해 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도 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다수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일관해왔지만, 이번 계기에 '확실한 계승'을 표명하라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정부가 아베 담화와 관련한 입장을 밝혀오긴 했지만 외교부 대변인 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며,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까지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성명 발표에 대해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아베 담화 초안 등이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나왔다.

일본 언론을 통해 나오는 아베 담화 내용이 우리 정부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압박은 물론, 연립여당으로서 막판 제어역할이 기대되는 공명당과 일본내 양심세력 등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NHK는 아베 담화 원안에 핵심 키워드인 '침략' '사죄' '통절한 반성' '식민지배'라는 단어가 모두 명기됐다고 정치권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지만 다만 과거 역사나 역대 정권의 대응을 거론하는 대목 등에 이들 표현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진정성에 기초한 반성이나 사죄의 표현이 아닌 비판 무마를 염두에 둔 일반론적 언급에 그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아베 담화 초안에 '사죄' 문구는 물론 그와 유사한 문구도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의 아베 담화와 관련한 핵심 키워드는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분명하게 계승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기존에 해왔던 대로 '전체적으로'라는 수식어를 붙여 진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아베 총리의 분명한 역사인식 표명을 관계개선을 위한 하나의 변곡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등 핵심 현안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안들은 현안대로 협의를 해나가면서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관계개선에 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날 성명에서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올해 한일관계가 선순환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희망하며 일본 스스로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받고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국가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고 언급한 대목도 이번 아베담화를 선순환적 발전의 디딤돌로 활용하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베 담화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경우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일면서 우리 정부가 운신할 폭이 좁아지고 이에 따라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도 적지 않은 공백이 우려된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