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여배우와 6·25 참전용사의 사랑과 결혼… 태국 선교 54년 이야기

입력 2015-08-10 18:09 수정 2015-08-10 18:10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청년이 있었다. ‘제대하면 선교사로 헌신하리라’고 다짐하던 청년은 매일 기도하고 전쟁터로 나갔다. 하지만 청년을 비롯한 젊은 병사들은 전쟁이 길어지자 지쳐만 갔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미군은 할리우드의 인기 연예인들을 초청했다. 그때 청년은 위문공연을 온 한 미모의 여가수 겸 배우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청년은 그녀와 손을 맞잡고 한국 땅에 평화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믿음 위에서 사랑을 키웠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리고 청년은 평소 다짐대로 ‘불교의 나라’ 태국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펼쳤다.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숱한 역경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 꿈을 견고하게 지킬 수 있었다.

태국에서 54년째 선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유뱅크 루이스 알란(84) 유뱅크 셜리 조안(82) 선교사 부부의 스토리다. 부부는 지난달 23~29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가 주최한 ‘유엔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 보은행사’에 참가했다. 젊은 시절에 처음 만났던 그때 그곳, 대한민국을 6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알란씨는 인터뷰와 이메일 등을 통해 할리우드 여배우와의 사랑과 결혼, 선교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계적인 인기 배우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노팅힐’을 연상케 했다.

“6·25전쟁 때 소대장이었던 저는 1953년 3월 한국 위문공연을 온 조안의 아름다움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됐습니다. 조안의 공연 스케줄을 어렵사리 알아냈고 데이트를 하게 됐지요. 군용 지프로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를 했는데, 조안은 당시 보통 여자와 달리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어 군용 지프를 운전하며 흥겨워하기도 했지요.”

조안은 한 달여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수 및 배우로 명성을 쌓았다.

알란씨는 조안을 잊을 수 없었다. 제대 후 오일(oil)을 판매하는 사업체에서 일하게 된 그는 조안의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어렵게 다시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예수님을 이야기했다. 선교에 대한 비전도 함께 나누며 데이트를 했다.

알란씨는 이후 텍사스기독대, 예일대, 남부감리교대 등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사로 나갈 것을 결심했다. 1959년 조안에게 청혼했고 마침내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조안이 평범한 제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조안이 선교사의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 좋고 마음씨도 고운 조안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선교사의 꿈을 위해 기도했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우리 부부는 54년 동안 태국 등지에서 선교사로 다정스레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1961년 미국 그리스도의교회 세계선교부 파송으로 태국 땅을 밟았다. 기독교단체인 TCF(Thai Christian Foundation)를 설립하고 다양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부부는 현지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혔다. 태국의 교회 개척 및 농촌 개발에 힘썼다. 조안은 수공예 산업을 하면서 십자가를 만들어 현지인들에게 전달하며 복음을 전했다.

부부는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 파얍 대학교에서 37년째 봉사하고 있다. 알란씨는 성경을 가르쳤고 신학대학원장을 지냈다. 조안은 음악학과에서 합창단을 지도했고 태국 왕실을 위한 공연 등 자선 콘서트도 개최했다.

알란씨는 81년 기독학원(CCI)도 세워 대표로 일하고 있다. 조안은 드라마와 노래 훈련을 통해 태국의 기독 가수와 배우를 양성하고 있다. 매년 2500여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선교 드라마를 공연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특히 청각장애인과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불우이웃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유뱅크씨 부부는 2000년 미국 선교사 임무를 마쳤다. 하지만 지금도 자원봉사자로 태국 치앙마이 근처 타이 빌리지 교회 등에서 봉사하고 있다.

“저희 부부를 하나님이 사용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요. 얼마나 더 사용하실지 궁금하고요. 한국교회도 예수님이 명령하신 ‘땅 끝 선교’에 참여해보세요. 늘 새로워집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