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기도회, 폭염도 통일 염원 기도 열기 막지 못해

입력 2015-08-09 20:17
강민석 선임기자

9일 낮 승원(8)군은 아버지 최진규(42·새에덴교회)씨의 손을 잡고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로 향했다. 이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 70년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아직 남북분단과 평화통일의 의미에 대해 모르는 어린 아들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알려주기 위해 왔다”며 “함께 기도한 오늘이 아들에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맞서며 고사리 손에 쥔 태극기를 힘껏 흔드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통일한국의 주역이 될 다음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기도회는 2010년 ‘한국교회 8·15 대성회’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한국교회의 대형 연합집회다. 32도를 훌쩍 넘는 폭염도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기도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많은 성도들이 참석했다. 서울광장, 세종대로 사거리, 숭례문 사거리, 을지로 1가 사거리까지 기도회의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좌석에 미처 앉지 못한 이들은 도처에 돗자리를 깔았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양산, 부채 등 갖가지 도구가 동원됐다. 순서를 맡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넥타이를 매고 연두색 스톨을 걸친 채 강단 위의 자리를 지켰다. 기도회는 대형스크린과 일대 빌딩 6곳의 전광판에서 동시 생중계됐다.

참석자들은 물신숭배와 물량주의에 빠지고, 이념과 계층에 따라 분열된 현실을 회개하며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품고 평화를 일구며 통일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참석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김건옥(72·여)씨는 탈북민과 북한동포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에 특히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세 살 때인 1946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고향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6·25전쟁 이후 졸지에 실향민이 됐다. 김씨는 “이 자리가 불씨가 되어 앞으로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리고, 통일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참석자도 눈에 띄었다. 아내와 함께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광장을 찾은 이집트인 위도 엘사이드(28)씨는 “비록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한국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동참했다”고 말했다.

기도회의 마지막 순서 때 참석자 전원은 순서지에 새겨진 태극기를 펼쳐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행사의 끝을 알리는 전용재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의 축도가 끝났는데도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단 위의 교단장들과 연합기관 관계자들은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통일운동을 위해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연합과 기도운동을 당부했다. 이경석(52·서울 예수행복교회)씨는 “이번 평화통일기도회를 위해 한국교회의 많은 교단과 연합기관이 연합해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 감사했다”며 “한국교회가 앞으로도 다투지 말고 하나 되어 한반도의 통일과 복음 전파를 위해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 이사야 김아영 기자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