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된 이기택(56)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40층에 전용면적 137.24㎡(약 41.5평, 공급면적 55.7평) 아파트를 갖고 있다. 이 법원장의 재산신고에 따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일반에 공개한 이 아파트의 현재가액은 10억9600만원이다. 이 법원장은 재산총액을 도곡동의 다른 아파트 지분을 포함해 17억5119만원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이 돈을 액면 그대로 이 법원장의 재산총액으로 볼 수 있을까. 이 법원장이 1999년 6월부터 보유 중인 타워팰리스1차 41.5평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현재 16~17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 단지 54층의 같은 면적 아파트가 16억9000만원에, 11월에는 35층이 16억2000만원에 매매됐다. 이 법원장의 아파트가 ‘로열층’에 속하는 점과 최근 부동산 경기 등을 감안하면 재산신고 금액처럼 10억원대 후반에 거래될 가능성은 낮다.
아파트 가격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공직자 재산등록이 일반적 재산 개념인 실거래가가 아니라 기준시가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공동주택가격열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시가는 양도세·증여세 등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다. 실거래가의 60% 수준으로 낮다. 공직자윤리법이 ‘공시가격 또는 실거래가격’으로 주택·토지 등 부동산 재산을 신고토록 하고 있지만 둘 중 높은 액수인 실거래가를 선택하는 공직자는 드물다.
지난 6월 법무부 장관 내정 때 5억6000만원대 재산을 신고한 김현웅 장관도 비슷한 사례다. 김 장관은 자신이 소유한 서울 봉천동 우성아파트 가격을 기준시가를 바탕으로 3억2400만원 수준으로 신고했다. 국토부와 부동산업계가 말하는 이 아파트의 실제 매매가는 4억5000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관보만 보면 김 장관의 아파트 재산가치는 전세가(3억4000만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보이기도 했다.
실제 부동산의 가치보다 낮게 재산이 신고되는 관행에 대해 공직자들은 “시스템이 그렇게 마련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산등록은 인적사항 등만 입력하면 예금 등 재산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시스템에 따라 이뤄진다. 일반적 재산 개념에 비해 축소되는 때가 많지만, 법령과 시스템에 근거한 축소인 셈이다.
기준시가 위주의 부동산 재산공개 시스템은 정확한 재산을 국민에게 알린다는 본연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는다. 당장 재산을 공개하는 공직자들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오랜 공직생활에도 불구하고 빚만 안은 것처럼 드러난 법조계 고위 인사는 “기준시가를 바탕으로 따진 결과일 뿐, 실제 재산은 관보에 게재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세금산정 기준보다 실거래가 기준이 정확한 재산 공개라는 점에는 이견이 적다. 다운계약 의혹에 휘말리면서도 실거래가 재산등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공직자도 있다. 2012년 대법관 후보자였던 김병화(60)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 이사장은 아파트 가격을 실거래가로 신고했다가 과거 구청에 제출한 기준시가 계약서보다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청문회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실거래 재산등록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항상 저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정확하게 얘기하고 밝히며 살아 왔다”고 답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타워팰리스 살면서 요만큼?” 공직자 재산공개, 눈 가리고 아웅
입력 2015-08-09 17:42 수정 2015-08-10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