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을 수리하는가… 무회건축사무소 김재관 대표가 말하는 리모델링

입력 2015-08-09 16:17

아파트의 매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집값이 안정화돼 재산 증식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잃어서다. 집은 이제 투자수단이 아니라 주거 공간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그래선지 단독 주택을 지어 아파트의 획일적 삶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판교 신도시 같은 대규모 주택단지를 분양받지 않고서는 ‘마당 있는 집’의 꿈을 실현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리모델링은 어떨까. 헌집을 사서 고쳐 쓰는 거다.

무회건축사무소 김재관(53) 대표를 지난 5일 만나 리모델링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011년부터 ‘집수리업자’를 자처하며 주택 리모델링 시장을 개척한 건축계의 이단아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명륜 3가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남의 집만 고쳐주던 그는 지난해 아파트 생활을 청산했다. 허름한 3층 다세대 주택을 사 6개월 공사 끝에 지금의 새집으로 탈바꿈시켰다.

북악산과 축대 하나로 맞닿아 있다. 동네에선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이 집의 살구나무 아래, 야외용 식탁에 앉으면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마당이 있는 집이다. 이 장소를 즐기기 위해 차도 허덕거리는 45도 경사의 출퇴근길은 감내해야 한다.

-왜 ‘집수리’인가.

“집도 고쳐 쓸 수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라진 집수리 문화가 이제는 살아나야 한다. 신축할 땅도 부족하지만 낡아서 불편한 집이 많지 않은가.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 신축을 통한 경제적 비용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다.”

-흔히 건축가가 지은 집하면 떠올리게 되는 ‘빨간 지붕, 파란 잔디’가 아니다.(이 집 외벽은 회색 시멘트 벽돌이다. 데크는 나무가 아닌 구멍이 숭숭 뚫린 공사장 가설재를 썼다. 잔디 대신 마당에 상추, 허브 등을 심어 텃밭을 만들었다.)

“나는 외관에 힘을 주지 않는다. 건물 혼자 튀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축가와 수리업자의 차이점이 있다면.

“건축을 순수예술처럼 생각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건축은 건축주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건축 행위를 작가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됐다.”

(영국 런던 옥스퍼드브룩스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6년 무회건축사무소를 설립하고 교회 건축을 많이 해 교회건축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집 수리업자인 지금은 여느 건축가처럼 설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공을 한다. 그래서 자칭 목수다. 그런 자신을 제작에서 감독, 시나리오, 편집, 연기까지 모두 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비유했다.)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좋은 점이 있나.

“기존 건물 뼈대, 즉 골조는 재사용할 수 있다. 전체 시공의 25%를 차지하는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나머지 75%는 예산 범위와 환자(기존 건물) 상태에 따라 다르다.”

-리모델링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뭔가.

“집수리는 작곡이 아니라 편곡이다. 편곡에서 중요한 건 원작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기존 건물의 특성과 지형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이 집을 예로 들자면 자연지형이 중시됐다. 축대의 돌, 저기 보이는 자연 암벽과 잔디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30년 넘은 살구나무를 살려야 해 야외용 식탁 위에 지붕을 만들지 않았다.”

-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설계를 반드시 해야 한다. 설계는 일종의 레시피다. 재료로 감자를 쓸지, 당근을 쓸지, 쓴다면 몇 개를 쓸지 설계를 해야 정확하게 예산이 나온다. 건축물 수명도 따져 리모델링이 가능할 정도로 기존 건물 상태가 쓸만한 지 판단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집, 리모델링은 이럴때

아파트만 리모델링 대상이 아니다. 기존 주택도 고쳐 쓸 수 있다. 흔히 집수리하면 비가 새거나 낡은 것을 고치는 정도를 생각한다. 그러나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주택이 갖고 있는 물리적 조건에 약간의 변형만 가해도 집에서 누리는 삶의 질이 달라진다. 예컨대, 아이들이 성인이 돼 결혼하면서 세대 구성원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집 내부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현재 주택이 갖고 있는 불편한 점도 감내하기보다는 고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재관 대표는 지금까지의 시공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으면 리모델링이 좋을 것이라고 권한다. 우선 집의 지대가 높아서 앞집 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람에 원치 않게 이웃간 사생활 침해를 둘러싼 잡음이 생기는 경우다. 남향집이 좋다지만 남향에 배치된 공간(안방, 자녀방, 현관)으로 인해 그 이면 공간(부엌, 화장실, 보일러실) 등이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리모델링을 시도할 만하다. 대문이 도로에 면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거나, 가게 앞 도로가 경사져 고객 출입이 불편한 때에도 리모델링이 괜찮다.

리모델링 비용은?

김재관 대표의 3층 다세대 주택은 층별 연면적이 40㎡(12평)에 불과하다. 그것도 가로로 길쭉한 기형적인 구조다. 그마저 가로 18m이며 세로는 가장 긴 게 2.8m로 들쭉날쭉하다. 집은 반드시 반듯한 정사각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으로, 집 구조에 맞게 얼마든지 공간을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설계비를 제외한 건축비(시공+자재비)는 3.3㎡(1평) 당 50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어떤 자재를 쓰느냐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50평 단독 주택을 고칠 경우 2억5000만원이 소요된다. 리모델링 비용은 2억원 가량은 들여야 집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설계비는 별도다. 건축 면적에 따라 다르며 50평의 경우 2000만원을 예상하면 된다.

집을 팔 경우 리모델링 비용은 양도차익을 계산할 때 비용으로 공제된다. 따라서 집을 수리할 때의 설계도면, 견적서 등 입증자료를 꼼꼼히 챙기는 것이 좋다. 수리기간은 6개월 정도 잡으면 된다.

김 대표는 “처음 ‘집수리업자’로 나선 2011년에는 1건을 맡았지만 지금은 연 3, 4건으로 늘어났다”면서 “주택에 대한 개념이 투자수단에서 주거 공간으로 서서히 바뀌면서 리모델링이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