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첫 대선후보 TV토론회는 또 한편의 ‘트럼프 쇼’로 끝났다. 토론회 서두부터 ‘자신이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되지 않으면 승복하기 어렵다’는 폭탄발언을 하는가 하면 여성 비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여전히 거침없는 트럼프의 막말 행진=토론회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10명의 후보가 소개된 뒤 본격 토론에 들어가기 전 “경선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후보가 있으면 손을 들라”고 진행자가 말하자, 유일하게 트럼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객석은 술렁였고, 경쟁 후보들은 혀를 찼다. 트럼프는 “내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자신이 후보가 되지 않으면 뛰쳐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랜드 폴 상원의원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는 “이게 바로 문제다. 저 사람(트럼프)은 온갖 정치인들을 매수했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으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것”이라고 쏘아 붙였다. 이에 트럼프는 “내가 당신한테도 많은 돈을 줬다”고 폭로성 발언으로 응수했다.
트럼프는 공개석상에서 또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절제하지 못했다. 여성 진행자인 메긴 켈리가 “당신은 트위터에서 당신이 싫어하는 여자들을 뚱뚱한 돼지나 개, 속물, 그리고 역겨운 동물로 불렀다”며 여성 비하 발언을 지적하자 “로지 오도널 한 사람한테만 했다”고 대답해 야유를 받았다. 로지 오도널은 동성결혼을 한 거구의 여성 코미디언이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 다른 후보들은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밀려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CNN은 ‘트럼프가 토론회의 물을 흐렸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토론회를 훔쳐갔다’고 혹평했다.
◇정책과 공약이행 방안은 제시 못해=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살인자 등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달라’는 사회자의 요구에 즉답을 피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불법이민자들의 살인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현실”이라며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어리석어서 불법이민자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토론회는 이민개혁과 테러, 낙태, 경제회복, 이란 핵합의 등 여러 주제를 다뤘지만 후보들이 많은 데다 시간이 부족해 충분한 질문과 설명이 오가지 못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4% 경제성장률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자신의 주지사 시절 일자리 창출 실적과 주정부 예산삭감 등을 언급하며 “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모두 폐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트럼프 대선후보 가능성 낮아”=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80년 이후 대선후보 선출과정을 분석한 결과 동료 정치인들과 공화당 지도부의 지지, 정치자금 모금 실적, 첫 경선지(아이오와, 뉴햄프셔)의 여론 등이 초기의 전국단위 여론조사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NYT는 이를 감안하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트럼프를 제치고 공화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NYT는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와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의 후보 선출 가능성을 각각 2, 3위로 예측했다. 트럼프의 대선후보 가능성은 4위로 평가했다.
정치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공화당에서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할 확률을 2%로 제시했다. 실버는 “설사 그가 전당대회까지 진출한다 해도 공화당에서 트럼프가 대선 후보 자리에 오르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미국 공화당 첫 대선후보 TV토론회 ‘트럼프 쇼’로 끝나
입력 2015-08-07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