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가보니'] 담양습지 대숲에 깃든 희귀동식물은 4대강 사업을 견뎌냈을까

입력 2015-08-06 07:34 수정 2015-08-09 10:53

[사진설명](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죽순대 / 전남 담양 태목리 담양습지에 형성된 대나무숲 / 무당거미 / 검은물잠자리 / 알락하늘소 / 긴호랑거미 / 중국청남색잎벌레 / 조류관찰대에서 조망한 담양습지 / 죽순 / 황로와 왜가리 / 꼬마물떼새와 날아가는 왜가리 / 흰망태버섯 / 백로 / 파랑새 / 담양=구성찬 기자


대나무는 선비를 상징하고, 대나무 숲은 사시사철 청량하다. 성과 속, 강과 약, 나무와 풀 등 대나무처럼 중첩된 이미지를 한 몸에 많이 가진 식물을 달리 찾기 어렵다. 예로부터 4군자의 하나로 고귀하게 취급됐지만, 서민들의 실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식용(죽순, 죽실), 생활용품(천연에어컨, 베게, 바구니, 가구 등), 심지어 무기(죽창)로까지 폭넓게 활용됐다. “굳세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으며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다. 속이 비어 있거나 차 있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마디가 있는 점은 동일하다.”<진(晋)나라 대개지(戴凱之)의 죽보(竹譜)>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어서 나무와 풀의 중간형태로 간주된다. 식물학자들은 대나무를 벼과의 상록활엽성 목본이라고 본다.

◇ 천연 대나무숲과 국내 최초 하천습지 보호지역
대숲 속에서 더위를 잊기 위해 지난달 22일과 23일 담양습지를 찾았다. 담양습지는 영산강 상류 담양군과 광주광역시가 만나는 하천 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대숲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환경부는 지난 2004년 담양군 대전면 태목리와 강의리, 광주 북구 용강동 일대 습지 약 1㎢(98만㎡)를 하천습지로는 전국 처음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일하는 김순정(男) 자연환경해설사는 “대숲 면적은 15만㎡ 가량으로 왕대, 죽순대, 솜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에 대나무는 무려 400여 종류나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18종정도가 서식한다. 김 해설사는 “왕대의 경우 하루에 최장 1m20cm까지 자랄 정도로 대나무의 성장속도는 빠르다”면서 “보통 35~40일간 키와 둘레 모두 성체로 성장을 마친다”고 말했다. 대나무는 대략 60~120년 만에 개화하고 나면 이듬해 열매를 맺고 죽는다. 이런 이유로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은 ‘세기의 현상’으로 불린다.
왕대는 대나 무 종류 중에 키가 큰 대나무로 중국에서 들여왔다. 따뜻한 호남 지방에 많고 보통 10~20m까지 자란다. 한 마디의 길이가 대개 25~40cm 가량이고, 5~6월에 나는 죽순은 먹을 수 있다. 죽순대는 죽순을 해 먹는 대나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으나, 흔히 맹종죽으로도 불린다. 옛날 중국 오나라의 효자 맹종이 모친의 병을 고치려고 엄동설한에 죽순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땅에서 죽순이 올라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맹종죽은 왕대와 달리 마디 사이가 한 줄로 돼 있다. 솜대는 줄기에 흰 분말이 붙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점차 노란빛을 띤 녹색으로 변해간다. 4~5월에 나오는 죽순은 붉은빛을 띤 갈색이다. 솜대는 단맛이 돌아 감죽(甘竹), 또는 담죽(淡竹), 사죽(絲竹), 신죽(臣竹), 신의대 등으로 별칭이 많다. 줄기가 단단해서 죽세공품 재료로 많이 이용된다.

◇ ‘죽림연우’의 공간 속 생물 다양성의 현장
습지 입구의 대형 대바구니 모형 앞에는 죽림연우(竹林煙雨)라는 글이 적혀 있다. 대숲의 안개비가 절경이라는 뜻이다. 대숲 속으로 설치된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니 흔히 볼 수 없는 곤충과 거미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긴호랑거미, 검은물잠자리, 나비잠자리, 아시아실잠자리, 알락하늘소 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해설사는 “데크를 벗어나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면 흰줄숲모기 등 모기의 공격이 매섭기 때문에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면서 데크 안쪽을 가리켰다. 비 온 후 대숲 속에서 자라는 흰망태버섯이 보였다. 캡슐 모양의 외계인이 흰 망사치마를 입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기름진 땅 바닥에는 지네류가 많고 황줄까막노래기 등 노래기 종류도 풍부하다. 등산과 새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환경해설사가 됐다는 김씨는 “대숲과 내륙습지의 곤충 등 풍부한 먹이가 온갖 새와 포유동물들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담양습지는 규모가 작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큰 물가의 대숲을 품고 있어서 높은 종 다양성을 자랑한다. 매 삵 수달 맹꽁이 황구렁이 다묵장어 흰목물떼새 등 숱한 멸종위기종과 황조롱이 쇠백로 중대백로 해오라기 검은댕기해오라기 황로 등 철새들이 어울려 산다. 겨울에는 큰고니 기러기 쇠물닭 흰꼬리수리 등이 찾아온다. 대숲을 조금 지나 상류방향으로 제방길을 걸으니 조류관찰대가 나타났다. 건물 안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니 해오라기, 황로, 왜가리 등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면 이미보가 보이고, 여기까지가 습지보호지역이다. 보 바로 밑에서는 원앙 가족이 새끼들에게 야생적응 훈련을 시키고 있다. 제방 흙벽 사이에서 물총새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김씨는 제방 너머 황금마을과 황덕마을에는 보기 어려운 파랑새가 4마리쯤 살고 있다고 말했고, 그 중 한 마리를 촬영할 수 있었다.

◇ 굶주린 백성의 양식, 선비가 사랑한 나무
왕대, 솜대, 죽순대의 죽순은 모두 먹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토종인 조릿대의 죽순은 먹지 않는다. 대신 그 열매를 먹는데 그것을 죽실(竹實)이라고 한다. 옛날에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식품이었다. ‘지봉유설’에는 조선시대에 굶주린 백성들이 죽실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도 죽실을 죽미(竹米)라 하여 밥 대신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옛말에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이 아니면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동나무는 선비의 집과 정자에서 회화나무와 함께 빠지지 않고 심겨 있다.
‘밥 먹을 때 고기반찬 없는 것은 괜찮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야 될 말인가./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수척할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네./ 사람들이 수척하면 그래도 살찌울 수 있지만/ 속된 선비는 낫게 할 수 없다네./…/ 차군(此君)을 마주하고 크게 술을 마신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揚州)의 학(鶴)이 있겠소?’ <소식(蘇軾), ‘잠승의 녹헌균에서’> ‘이 사람’이라는 뜻의 ‘차군’은 중국 동진의 문인 왕휘지(王徽之)의 고사에서 대나무를 일컫는다. ‘양주의 학’이란 허리에 십만 관의 금을 차고는 학을 타고서 양주 상공을 날고 싶다며 세 사람의 소원을 다 이루려고 한 양주 사람의 욕심을 일컫는다. 소동파는 이 고사를 들어 속세의 부귀영화보다 대나무가 좋다고 한 것이다.

◇ 4대강 사업이 파헤친 생태 보호지역
담양습지는 생태적 가치에 비해 일반에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광주, 전남 지역 중고생들이 가끔 견학을 오고, 4대강 사업으로 제방길이 영산강종주 자전거길로 정비되면서 자전거족들이 이따금 지나다닐 뿐이다. 그래서인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대숲의 38%, 대나무 1만여 그루가 안타깝게 제거되고 말았지만, 언론으로부터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영산강환경청은 “생태계 모니터링 결과 서식하는 동물 종이 감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지만,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문화재청이 태목리 대나무군락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면서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매, 황조롱이, 검은딱새, 큰오색딱다구리 등 조류 58종, 두더지, 등줄쥐, 멧밭쥐 등 포유류 7종, 다묵장어, 돌마자 등 어류 48종과 줄, 달뿌리풀 등 희귀식물이 서식했다. 영산강환경청의 2009년(4~10월) 보호지역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어류 27종, 조류 70종, 양서류 4종, 파충류 6종, 포유류 7종이 발견됐다. 올해 1, 2분기 모니터링 결과로는 4대강사업이후에도 희귀종, 법정보호종들이 건재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옮겨 심은 대나무들이 시들시들한 모습이어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보호지역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전반적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담양=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