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장 사건’ 터진 22사단 GOP…교회, 성도 등이 기증한 38개 독서카페로 거듭나다

입력 2015-08-03 17:38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던 지난달 31일.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사령부에서 출발한 차량이 휴전선 철책으로 향했다. 45분가량 달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 도착하자 검문소를 지키던 병사가 경례한 뒤 방문객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차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3m 높이의 ‘충혼비(忠魂碑)’가 눈에 들어왔다.

“이 충혼비는 2014년 6월 22사단 55연대 GOP(일반전초) 경계 작전에서 순직한 다섯 전우의 고귀한 희생을 전 장병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리기 위해 사단 장병의 모금으로 설립함. 2015년 6월 21일.”

순직한 한 병사의 사진 옆에 가족이 남긴 문구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했던 아들! 나라를 위해서도 충성을 다하다가 부름을 받았구나.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거라. 우찬아! 사랑한다!! 그리고 끝 날까지 기억할게.”

임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병사 5명이 숨진 ‘임 병장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비였다.

민통선을 지나 차로 25분 정도 더 들어가니 조립식 건물이 나타났다. 최전방 GOP였다. GOP 앞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30㎡ 규모의 ‘사랑의 북 카페’가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책장에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독서 등이 켜진 책상에 성경을 펴놓고 기도하는 병사도 눈에 띄었다.

김재환(21) 상병은 “시원한 북 카페에서 성경을 읽으니 믿음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며 “제대하는 그날까지 경계근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규(20) 이병은 “북 카페가 설치되면서 소초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책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하고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혁 22사단장은 “북 카페 설치 이후 사고가 크게 줄었다”며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배양하며 더 평안한 군 생활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GOP 북 카페는 장준규 제1야전군 사령관의 아이디어다. 책 읽는 병영문화를 만들겠다는 장 사령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1월 8일 1호점이 문을 연 뒤 현재까지 제1야전군에 북 카페 39개가 개설됐다. 올 연말까지 북 카페 100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북 카페 설치에는 외부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통일대교회, 구로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군선교회,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김정순 권사 등 교회와 성도들도 후원에 참여했다. 부대는 일련번호와 함께 기증취지를 새긴 현판을 부착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고성은 전방지역에서도 최북단에 있다. 6·25전쟁 전의 38선보다 북방으로 80㎞ 올라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무장공비가 출몰한 적도 있다. ‘육지의 연평도’로 불릴 정도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김동규(21) 일병은 “최북단에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부모님, 걱정 마세요. 더 늠름하고 씩씩한 대한민국의 아들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안부를 전했다.

함께 북 카페를 방문한 군종목사 박충환 소령은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장병들도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며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박 소령은 “최근 군부대 내 종교생활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예배 참석자 중 허수가 줄고 예배 시간에 조는 장병도 많이 사라졌다”며 군 선교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GOP 소초장 유지웅 중위는 “며칠 전 ‘네이버 밴드’를 개설해 내무반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소초장은 병사의 부모와 가족에게 밴드 가입을 권유하고 사진 게시, 알림 메시지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방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경계근무를 서기 위해 출동하는 장병들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완전무장을 하고 즉각 대응태세도 갖췄다. 찜통더위 속에서도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철책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돌아오는 내내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마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던 장병들의 기도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고성=유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