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에 펀드레이징이 필요하다

입력 2015-08-02 15:16
최근 공연계의 화제는 서울변방연극제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올해 17회째인 변방연극제는 예술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독립적인 제작방식을 취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은 채 시민 모금에 나섰다.

변방연극제가 문화예술 분야에 특화돼 있는 ‘텀블벅’을 통해 목표로 삼은 모금액은 4900만원. 7월 21일부터 8월 2일까지 2주간 열린 축제의 규모를 생각할 땐 부족한 액수지만 순수 예술 관련 모금액으로는 적지 않은 편이었다. 지난 6월 24일부터 모금에 들어간 변방연극제는 마감 1주일을 앞둔 지난 20일까지만 해도 25%를 모금하는데 그쳤다. 마감을 하루 앞둔 26일에도 50%를 넘기지 못하면서 모금 실패 가능성이 높았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동안 모은 금액을 후원자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27일 마감 당일 오전부터 후원이 급증해 마감 시간인 오후 11시를 30여분 앞두고 목표액인 4900만원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변방연극제의 모금 실패를 안타까워한 연극계 관계자들이 앞다퉈 후원에 나선 덕분이다.

그러나 변방연극제의 이번 시도가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까. 원래 크라우드 펀딩의 대상은 대중이지만 변방연극제의 모금에는 연극계 관계자가 상당수 참여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정부 지원의 공공성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지면서 연극계가 동참한 것이다. 게다가 공연예술축제는 지속성이 중요한데, 매년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이런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임인자 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역시 “축제의 재원 조달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정부 지원금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올해는 일반 대중에게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논의를 확산시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변방연극제 외에도 현재 텀블벅에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프로그램으로 오는 9~10월 파리 가을축제에 초청된 안은미 컴퍼니를 비롯해 적지 않은 연극 및 무용 단체들이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나무’와 서울문화재단의 ‘소소한 기부’가 있지만 최근 텀블벅이 인기 있는 것은 사용자가 많은 데다 결제 시스템이 간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표 참조). ‘예술나무’는 텀블벅과 달리 모금 수수료(5.5%)를 받지 않고 ‘소소한 기부’는 나아가 매칭펀드로 지원금을 더해 주지만 결제 시스템이 텀블벅보다 다소 복잡하다. 게다가 ‘예술나무’와 ‘소소한 기부’가 모금액에 대한 지출 영수증 등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한 것도 정산 필요성이 없는 텀블벅을 선호하게 만든다.

변방연극제의 모금 성공 이후 공연계에서 ‘펀드레이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재원 조달을 가리키는 펀드레이징은 공공 및 민간재단의 지원, 기부와 협찬 등 후원, 투자유치 등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나라 예술단체의 경우 공공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지만 앞으로는 개인이나 기업 등 민간에서 재원을 조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력이나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재원조달 방법도 모르고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시민 모금으로 진행되는 혜화동 1번지의 연극 릴레이 ‘세월호’의 조하나 프로듀서는 “텀블벅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수수료도 만만치 않고 티켓 보상 등의 조건조차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면서 “우리 같은 예술단체들은 펀드레이징 전문가 또는 매개자들의 도움이 정말 절실하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계의 펀드레이징과 관련해 문화예술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문화예술이 우리 삶에서 필수적이며, 그런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 기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예술 기부는 소외계층 복지와 연결돼 있어서 창작에 대한 지원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예술단체 전문회계사인 한미회계법인 김성규 대표는 2일 “문화예술계에서 펀드레이징이 자리 잡으려면 우선 공공에서 예술에 대한 일반 인식을 바꿔 나가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예술단체 역시 운영의 투명성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