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 서희(29)가 털양말을 신고 춤을 췄다. 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2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시리즈 11번째 무대에서다. 서희는 프랑스 출신의 ABT 수석 발레리노 알렉산드르 암무디와 함께 미국 현대무용 안무가 그레고리 돌바시안의 ‘볼레로’를 선보였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지만 반복해서 변주되는 볼레로 음악에 맞춘 남녀 무용수의 유려한 움직임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돌바시안의 ‘볼레로’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동명음악을 갖고 안무한 것으로 대관령국제음악제 위촉으로 이뤄졌다.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안무를 위촉한 건 처음이다. 안무를 위해 관현악곡인 라벨의 음악은 4개 첼로와 1개 퍼커션용으로 편곡됐다. 서희는 앞서 지난 30일 암무디와 리암 스칼릿 안무의 ‘비가 올 확률’과 제임스 쿠델카 안무 ‘잔인한 세상’을 공연했다. 두 작품 모두 ABT 무대에 올랐으며 서희는 당시 토슈즈를 신었다.
서희는 “주최 측에서 라벨의 ‘볼레로’로 음악을 정한 뒤 제게 안무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힙합을 바탕으로 한 안무가인 돌바시안과의 작업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8개월 동안 암무디, 돌바시안이 시간 날 때마다 만나 작품을 만들었던 만큼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무척 재밌었다”고 소개했다.
2005년 ABT에 연수단원으로 입단한 서희는 이듬해 정단원이 됐고 2012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됐다. 특히 이번 시즌 줄리 켄트 등 발레단 선배들이 대거 은퇴하고 다른 수석 발레리나들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면서 입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공연 포스터에 등장하는 경우가 잦아졌으며 ‘지젤’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등 개·폐막 공연 주역도 맡았다. 개·폐막작 주역은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 몫이라는 점에서 서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ABT에서 기반을 잘 다져가고 있는 것 같다”며 “발레리나로서 가장 중요한 지금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ABT에 객원 무용수로 온 김기민(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과 ‘라바야데르’ 남녀 주역으로 춤을 춘 것은 한국 발레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서희는 “지난해 제가 마린스키발레단에 객원 무용수로 갔을 때 기민씨가 ‘우리 언제 한 번 같이 추자’고 했는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며 “뉴욕 공연에 대한 리뷰도 너무 좋아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ABT의 스타 발레리노 다니엘 심킨 등 5명과 프로젝트 그룹 ‘인텐시오’를 결성했다. 7월 첫 공연을 가졌으며 국내외 투어가 예정돼 있다. 또 내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한국 후배 무용수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할 계획이다. 서희는 “제가 받았던 것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14일 개막한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는 4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평창=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대관령국제음악의 발레리나 서희를 만나다
입력 2015-08-02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