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한국 방송에 일본어가 이렇게 많이 나왔지?
지난 30일과 31일 KBS뉴스에는 동생인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 전 부회장의 인터뷰가 나왔다. 내용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인정했고, 동생을 그만두게 했다는 것.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끈 것은 내용보다 그가 한국어가 아닌 100% 일본어로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다. 신 총괄회장과 장남의 대화도 일본어로만 이뤄졌다. 이들은 대화에서 히로유키(신동주) 아키오(신동빈) 그리고 시게미츠(신격호)로 불려졌다. 시청자들은 한국어 자막을 보고서야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인터넷에선 롯데그룹을 경영하려는 사람이 우리말을 한 마디도 못해 실망이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생)은 “동주가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말했다.
일련의 사태를 놓고 롯데그룹과 일본의 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왕자의 난’의 주요무대는 일본이었다.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와 신 회장의 ‘진압’은 일본에서 벌어졌고, 고령의 신 총괄회장은 비행기에 올라 일본을 왕복했다. 롯데그룹 측은 “우리는 분명한 한국 기업”이라는 입장이다. 롯데그룹을 둘러싼 국적 논란에는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시작된 75년여의 복잡한 가족사와 롯데의 특이한 지배구조가 얽혀 있다.
◇일본에 터를 잡았지만 국적은 한국=신 총괄회장은 18세이던 1940년 고향인 울주군에서 고(故) 노순화씨를 첫 부인으로 맞이했다. 신 총괄회장은 부인이 장녀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을 출산하기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중혼을 했다. 이 결혼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일본 이름도 얻었다.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일본명 히로유키)과 차남 신 회장(일본명 아키오)은 하쓰코 여사의 소생이다.
신동주 신동빈 두 형제는 일본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1978년 미쓰비시상사에 평사원으로 들어가 10년을 근무했다. 이후 일본 롯데상사 미국 지사장을 거쳤다. 신동빈 회장은 형과 같은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를 마친 후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신동빈 회장은 서른이 되던 1985년 일본인 부인과 결혼했다. 일본 대형 건설사인 다이세이 건설 부회장의 차녀인 마나미 여사다. 신 전 부회장의 아들과 신 회장의 두 딸은 현재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신 전 회장은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 신 회장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서툴렀다고 한다. 이러한 이력들은 롯데그룹을 ‘일본인이 지배하는 재벌’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켰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 신 전 부회장, 신 회장 모두 국적은 한국이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 거주 중에도 계속 한국 국적을 유지해왔다. 일본에서 태어난 두 아들은 한때 한국과 일본 이중 국적이었지만 1990년대에 한국 국적으로 정리했다.
◇매출은 한국 롯데, 지배는 일본 롯데=롯데그룹 지배 구조의 최정점에는 일본 회사가 있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대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19.07%)다. 나머지 주주들도 대부분 일본 회사로 호텔롯데의 일본 측 지분율은 99%를 넘는다.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가 된 ㈜롯데를 설립했다. 한국 롯데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인 1967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만들어진 롯데제과부터 시작한다. 가족사와 별도로 롯데의 뿌리가 일본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매출 규모는 한국 롯데가 압도적이다. 2013년 기준 한국 롯데의 매출은 83조원인 반면 일본 롯데는 5조7000억원에 그쳤다.
한승주 유성열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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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1 12:02 수정 2015-08-01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