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져 있던 롯데그룹의 민낯이 ‘형제의 난’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지배구조, 오너의 독단적인 황제 경영, 그룹 지배권을 놓고 부자간·형제간·친족간 벌어지는 이전투구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연매출 83조원에 임직원수 10만명,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 재계 서열 5위 그룹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전근대적인 모습들이다. 한국 재벌들이 회사를 사유화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이번 롯데그룹 사태는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밀실 경영’은 재계 내에서도 유명하다.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는 낮은 지분과 수백 개의 순환출자로 계열사를 지배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말 발표한 ‘2015 대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전체 그룹 주식의 0.05%만 보유하고 있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일가를 모두 합쳐도 지분율이 2.41%밖에 되지 않는다. 신 총괄회장 일가는 낮은 지분율로 400개가 넘는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해 그룹을 경영해왔다. 하지만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구조는 그룹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부도 일본기업이라는 이유로 지배구조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롯데의 지주사인 호텔롯데는 지난 2013년 공모사채 발행을 추진하다가 금융당국이 지배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자 아예 공모사채 발행을 취소했다. 공정거래위 고위관계자는 31일 “현행법 상 지분구조 공개의무대상은 국내 계열사이고, 롯데홀딩스는 롯데의 국내 계열사가 아니어서 (지분구조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독단적인 ‘황제경영’의 단면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27일 일본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갑자기 인사담당 임원들을 불러 모아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해임을 지시하고 인사명령서를 돌렸다. 그룹 지주회사의 이사들을 해임하면서도 해임이유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다만 신 총괄회장은 손으로 이사들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신 총괄회장은 한국 롯데의 임원 3~4명을 해임한다는 내용의 지시서를 작성했다고 알려졌지만, 한국 롯데 측은 “잘 모르겠다”고 해명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등기임원이나 이사회 멤버를 해임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의 구두지시가 모든 절차에 우선돼 왔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는 신동빈 회장 측이 법적 절차를 이유로 신 총괄회장의 지시를 거부해버려 해임지시서가 휴지조각이 됐지만, 이전에는 신 총괄회장의 지시에 따라 모든 인사가 이뤄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룹 인사나 주요 사업결정이 오너에 좌우되다보니 후계구도 논의는 가족간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신 총괄회장의 네 자녀 중 신동빈 회장,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 등 직계 자녀들이 전면에 등장했고, 신 총괄회장의 부인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신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동빈 회장의 사촌인 신동인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도 편을 갈라 형제의 난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경제개혁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한국 재벌가의 특성상 롯데가의 후계 싸움이 아주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라며 “다만 소유구조에 대한 공개를 통해 시장의 혼선과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도영 윤성민 기자 dynam@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롯데 "신격호 처가, 일본 외상과 무관" 공식 해명
[롯데 경영권 분쟁] 고스란히 드러나는 재계 서열 5위의 부끄러운 민낯
입력 2015-07-31 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