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해바리기운동 재현되나

입력 2015-07-31 17:20
대만의 ‘친(親)중국’ 성향의 고등학교 교과과정 개편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들이 대만 입법원과 교육부 청사에 난입을 시도하면서 지난해 ‘해바라기 운동’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만 대학생들은 지난해 3월 중국과의 급격한 경제 협력 확대가 대만 경제를 중국에 예속시키고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20여일 동안 대만 입법원을 점거하는 ‘해바라기 운동’을 벌였다. 당시 시위대들이 들었던 해바라기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이번 시위 확산의 기폭제는 시위 주도 학생의 자살이다. 31일 대만 중앙통신사(CNA)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반교과과정 북부지역 고교연맹’ 소속 린관화가 신베이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했다. 유서는 없었지만 린관화는 죽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해. 8 5 12 16.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장관이 교과과정 개편을 철회하는 것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숫자는 영어 알파벳 ‘H-E-L-P'를 의미한다. 30일은 린관화의 20번째 생일이었다. 린관화는 직업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지난 6월부터 휴학 중이었다. 시위대를 대변해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도 많았고, 지난주 경찰에 연행되는 등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충격 속에 분노했다. 린관화의 사망 소식에 전날 밤 학생들은 교육부 청사 앞으로 몰려들었다. 곳곳에서 “우쓰화(대만 교육부 장관)는 살인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밤 10시쯤 100여명의 학생들은 청사 옆 입법원을 급습, 담을 넘기도 했다. 학생들은 특별 회기를 열어 새 교과과정을 철회하도록 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새벽 강제 해산된 학생들은 다시 교육부 청사 앞에 모여 200여명이 청사 건물 앞 광장을 점거했다. 학생들은 “린관화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교육부 장관의 사진을 불태웠다.

우쓰화 장관은 전날 린관화의 부모를 찾아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했고 교육부는 31일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린관화의 어머니는 녹음된 목소리로 “린관화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공방도 이어졌다. 야당인 민진당의 왕민성 대변인은 교과과정 개편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집권 국민당은 민진당을 향해 “어린 학생들을 전면에 내새워 불법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새 교과과정의 역사·지리·사회 교과서들은 ‘양안(대만·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사와 대만사는 ‘본국사(本國史)’로 통합되고, 중국에서 가장 큰 섬은 하이난섬에서 대만 섬으로 수정됐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학생들과 민간단체들은 교과과정 철회를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