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물러가고 남서쪽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폭염은 과거에 비해 유난히 빨리 찾아오고 길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반도의 폭염이 더 강해지고, 더 자주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폭염에 따른 사망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온난화 충격’ 큰 한반도=기상청은 30일 오전 11시를 기준으로 전남, 경북, 경남, 제주 등지 곳곳에 폭염경보를 내렸다. 대전, 경기, 충남 곳곳과 충북 전역에는 폭염주의보도 발령했다.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6도를 기록했다. 폭염주의보는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일 때,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각각 발효된다.
전국이 뜨겁게 달아오른 이날 서울 영등포구 공군회관에서 기상청 주최로 ‘폭염대응 토론회’가 열렸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앞으로 한반도를 강타하는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모두 심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주된 원인은 기후변화다. 김백조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고 상층 제트기류와 기압능이 발달하면서 현재 연중 1.3일인 폭염일이 점차 증가세를 보이겠다”고 진단했다.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했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RCP 2.6)에 따르면 한국 폭염일은 21세기 중반까지 늘어나 연평균 5.6일을 기록하다가 일정 수준 내에서 유지될 전망이다. 온실가스를 현재 수준으로 계속 배출할 경우(RCP 8.5)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김 원장은 “온실가스 저감정책 없이 지구온난화가 이어진다면 21세기 후반까지 폭염일이 계속 증가해 지금의 10배 이상인 연평균 13.6일로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RCP는 온실가스 감축 수준에 따라 나눈 4가지 시나리오다.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최소 1도에서 3.7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득균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은 육지·고위도 지역이며 우리나라가 속한 지역대가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 과장은 “우리나라의 기온은 지난 40년간 서서히 상승해왔다”며 “5월부터 폭염과 열대야가 찾아오는 등 여름이 빨라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김백조 국립기상과학원장도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이뤄지는데다 급속도로 고령화·도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폭염에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폭염 사망자 급증 전망=폭염은 국민 건강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8일 충남에 거주하는 A씨(34)가 건설현장 야외 작업 도중 열사병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고 30일 밝혔다. 올해 폭염으로 사망한 첫 번째 사례다. 지난 26~28일 사흘간 열사병·열실신·열탈진 등의 ‘온열질환’을 호소하며 전국 응급실 536곳을 찾은 사람은 74명에 달한다.
1994년을 제외하고 1991~2012년 여름철에 서울에서만 온열질환으로 평균 100명이 숨졌다. 기상청은 장마가 짧고 강수량이 적었던 1994년 전국에서 3384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극한 기온에 따른 사망자 수 통계에서 세계 상위 2~6위를 기록한 2003년 유럽 폭염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2030년대 서울의 장래인구추계자료를 적용했을 때 온열질환 사망자가 현재보다 2배 이상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망자 중 75세 이상 비율은 현재 27%에서 66%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건강증진재단의 지난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염에 의한 질병 부담이 전체의 97% 이상을 차지한다”며 “2011년 기준 폭염에 의한 건강영향 비용은 7075억원으로 전체 기후변화 건강영향 비용의 78%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세계 곳곳이 살인적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도와 파기스탄에선 4~6월 사이 폭염으로 3300여명 이상이 숨졌다. 미국은 1933년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보냈다.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도 기록적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5월부터 폭염특보가 발령됐고 지난 5월부터 이달까지 열대야가 41일 발생했다.
전수민 권기석 심희정 기자 suminism@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미래 한국은 폭염민국” 폭염 9.2일서 6배 폭증 우려
입력 2015-07-30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