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②

입력 2015-07-30 09:41
비엔나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트숍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사미술관 카페
백남준아트센터의〈TV정원〉. 2008년 개관되었고 세계적인 작가로서 국가적 차원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카페 앞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 권위와 근엄함을 넘어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형민 전 관장이 지난해 10월 직원 부당 채용 혐의로 직위 해제된 뒤 10개월째 관장 공석 상태다. 연초부터 진행한 새 관장 선임 절차가 지난 6월 ‘적격자 없음’으로 무산되면서 최종 후보와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원색적인 비난전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일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없는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긴급 진단하는 글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글 싣는 순서>

①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

②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

③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④흔들리는 공공미술관

⑤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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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에서 차를 내리는 순간 놀라운 가게 한 곳을 만나게 된다. 뉴욕에 있어야 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트숍이 비엔나에 까지 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갸우뚱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이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호주, 일본, 멕시코, 태국, 싱가포르 등에 15개의 아트숍을 개설하고 미국 국내에도 라과디어 공항, JFK국제공항, 로건 공항 등에 8개소가 있다. 상품 종류도 보석, 시계, 포스터와 판화, 게임에 이르기 까지 장사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망라하고 있다.

아직도 빈약하기만 한 아트상품의 수준과 공격적인 마케팅 사례를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너무나 많은 거리가 있다. 선진 여러 나라 미술관들의 상품판매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은 입장료 수입보다 상품 판매가 더 많으며 카페, 식당운영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수입 루트이다.

비엔나의 비엔나미술사미술관,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미술관 카페는 전시장보다도 가고 싶은 곳으로 유명하며, 퐁피두센터는 아예 1층을 거대한 전문서점과 아트상품 코너로 만들었다. 모마는 인터넷으로 작가들의 작품과 콜라보된 상품을 전 세계로 판매하고 있으며, 여러 도시에 국제 라이선스를 체결하여 아트숍을 운영하고 있다.

비영리인 미술관의 생존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서 투자수입, 비즈니스 벤처, 펀드, 부동산 수입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서 거대한 기업의 면모를 방불케 하고 있다. 주식도 투자하고, 목이 좋은 부동산도 구입하여 세를 받아 수익금을 충당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형태의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 미술관내의 수입에 의지하는 비율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기부담당자들은 유명인들의 유증자산을 겨냥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슈퍼리치들에게 보내는 다양한 러브콜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소장품을 되파는 미술관의 현실

우리나라와 같이 국립, 공립, 사립, 대학미술관의 구분이 명확히 된 곳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유는 외국의 대부분이 국공립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 관장의 선임부터, 컬렉션과 전시기능 등이 그렇다. 그 대신 미술관도 일정부분 재정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 이와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미술관들은 스스로 경영전문가를 고위직으로 채용하여 전방위적인 생존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나 정부에서는 미술관이 문화기반 시설이라는 인식이전에 ‘돈 먹는 하마’라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급등해온 미술품가격 때문에 유명작가의 소장품구입은 자체 예산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며, 몰려드는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나 시설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의 하락으로 전반적으로 지원금이 줄어들고, 기부금 역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미술관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소장품을 되팔겠다는 미술관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4월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독일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주립 뮤지엄에 40년간 한 자리에 전시되었던 헨리 무어의 조각 작품과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작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했으며, 지방정부 컬렉션 중 400여점도 동일한 운명에 처했다. 미국의 델라웨어미술관은 작년 1980만 달러의 빚을 갚기 위해 회화작품 판매결정을 내렸고,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데번 카운티 토르키 뮤지엄의 보조금을 43% 삭감함에 따라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편지와 같은 아이템들을 옥션을 통해 판매하기를 희망하였으며, 크리스티는 이를 적극 받아들여 30만 달러 평가 가격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뉴올리언스 미술관 관장 수잔 테일러는 기관들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품 판매를 도구로 삼는 것은 “뮤지엄이 하지 말아야 할 타협점이며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주지 못 한다”고 말하는 등 미술관들의 궁여지책을 비난하였다.

먼 나라를 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40개에 달하는 공공미술관 역시 최저한의 연명수준 재정으로 운영되는 예가 적지 않다. 가까운 예로 경기도 산하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 6개 뮤지엄이 그 예이다. 최근 세수가 줄어들면서 문화재단의 예산이 하락하고 뮤지엄들의 지원금이 급격히 감소되어왔다. 소장품구입이 제로인 상태가 벌써 몇 년째 지속되고 있고 기획전 재정은 거의 최하 수준이다. 급기야 백남준아트센터는 2층 전시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야기했다. 이러한 실상에서 유행하는 말은 ‘비예산 사업’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이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역시 소장품 재판매 소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공미술관은 고작 ‘5분의 영광만’ 존재한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화려한 개막식 뒤에는 계획적인 지원과 경영전략이 연계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결국 장식품처럼 현상 유지에만 바쁜 비애를 말하고 있다.



*미술관의 카페는 문을 닫지 않는다

미술관의 재정압박은 단순히 이러한 내면적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미술관의 경쟁대상은 단순히 공연장이나 갤러리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제 CGV나 축제, 테마파크, 공연장 등과 경쟁을 통해 관람객을 유치해가야 하는 현실이다. 관람객이 고객이라는 단어로 변화한 지 오래이고 고객의 만족도와 서비스에 따라 관람료, 제반 부대수입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영리공간일수록 많은 예산을 들여 첨단 영상기술과 스크린, 쾌적한 인테리어 디자인개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공무원들의 눈치만 봐야하는 미술관 입장에서 리모델링을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공공미술관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사제도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담당 공무원, 관장의 인사발령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굳이 공무원만을 지적할 문제가 아니라 관장들 또한 미술관 분야 학문적 연구 실적이 없고, 실전에서 체험한 경우가 드물다. 결국 미술관운영전략, 공무원의 전문성 모두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여기에 현재 우리나라 공공미술관의 인적구성은 학예직과 행정공무원만으로 되어있으며, 경영을 위한 전문가 개입이 없는 이상한 구조이다.

앞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영리와 비영리형 사회 기반시설의 현실적인 격차는 벌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최우선 대안으로서 충분히 준비된 법인화를 서둘러야 한다. 공무원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독자적인 운영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을 하되 간섭은 최소한으로 축소한다는 영국의 ‘팔길이 원칙(The arm’s length principle/ALP)’은 세계적으로 이미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전시를 기획하려면 그만큼 많은 예산이 수반되고, 명품을 소장하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자립도를 높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장기적으로 수준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소통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최근 관람객수 만을 의식한 전시를 기획하여 질적인 저하를 초래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한 두 번의 이벤트성 전시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성에는 문제가 있으며, 그와 같은 기획방향이 자립도로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사회 등을 두어서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제도적 대안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영국처럼 아예 미술관이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수익전체를 미술관에 기부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도입할 만하다. 테이트 갤러리의 테이트 엔터프라이스 회사, 테이트 프로젝트 회사, 국립초상화갤러리의 국립초상화갤러리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국립박물관연합(Rmn) 역시 정부산하 기구로서 관람료, 아트숍, 카페, 저작권 등을 총괄하면서 수입구조를 일원화하여 전문성을 담보하는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이태원, 명동, 해운대, 샹제리제 거리 등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국립미술관 아트숍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공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테이트 갤러리는 문을 닫아도 테이트 갤러리의 카페는 문을 닫지 않는다’. 이 한마디는 오늘날 비영리 성격의 미술관이 처한 절박한 현실과 생존전략을 위한 모든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