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서 두 남녀 구하고 하늘로간 엄마…“봉사의 삶 살아온 천사”

입력 2015-07-30 00:15
사진=페이스북 캡쳐

“어릴 때부터 본 건 봉사활동하는 엄마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주부가 마지막 순간까지 계곡에 빠진 연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25일 이혜경(51·여)씨는 지인 7명과 산악회 회원 등 40여명과 함께 경북 울진의 왕피천 용소계곡으로 무박 2일 계곡 트레킹을 떠났다.

이씨는 다음날 회원들과 함께 상류부터 계곡을 헤엄쳐 내려오는 방식으로 트레킹을 하다 계곡 물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이씨는 계곡물에 등산 스틱을 떨어뜨린 한 남성이 스틱을 주우러 물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 그러나 곧바로 그 남성은 수심 3m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남성의 일행인 한 여성도 뛰어들었지만 같이 물에 빠졌다.

수영선수 출신에 라이프가드(안전요원) 자격증을 가진 이씨는 이를 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잠수를 해서 곧 스틱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스틱 잡고 나가요. 살 수 있어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을 물가로 힘껏 밀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직후 이씨는 다리를 떨며 물에 힘없이 둥둥 떴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두 사람을 살려낸 이씨가 세상과 작별한 순간이었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씨는 연세대 체육학과 82학번으로 캠퍼스 커플로 만난 김덕배(51·전 서울시의원)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 유빈(25)·수빈(22)씨를 뒀다. 서울시 대표로도 활동한 장거리 전문 자유형 선수였던 이씨는 선수 생활을 접고 1986년부터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남편 김씨는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해 ‘산을 사랑한 바다공주’라는 닉네임을 즐겨 썼다”며 “사람을 구하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 1년에 1∼2명의 목숨은 살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에도 등산 중 실족한 노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서 목숨을 구했고 물에 빠진 딸 친구를 구하고 무더위 속 차 안에 갇힌 노인을 살려내는 등 사람을 구한 사례는 셀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서초구 녹색어머니회 활동, 지역 도서관 사서 봉사, 치매노인센터 주방 봉사, 장애인 아동 수영 강습, 각종 성당 봉사활동, 노인대학 봉사 등 고인이 지역에서 해온 봉사활동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씨는 특히 치매 초기인 시어머니가 홀로 지내는 영등포의 집에 매주 들러 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만들어 놓는 등 손위·아래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효부였다고도 가족들이 전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큰 딸 유빈씨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파견으로 필리핀에서 장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수빈씨는 지역 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수빈씨는 “어릴 때부터 본 건 봉사활동하는 엄마의 모습뿐이었다”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가 해오던 봉사활동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주위 사람들은 “늘 남의 생명을 구하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트레킹에 함께했던 친구 하미경(50·여)씨는 “사고 전으로 시간이 되돌려진대도 혜경이는 아마 똑같이 사람들을 구하러 물로 뛰어들었을 거예요”라며 “원래 그런 친구예요. 그야말로 의인이죠”라고 말했다.

SNS에서도 이씨의 선후배들이 그녀를 기억하며 추모글을 남겼다. “선배님 당신의 빛나는 업적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선배님 좋은 곳에 가셨겠지만 남은 김덕배 선배님과 아이들은 어쩌죠” “선배님 존경합니다” “구조자분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 “선배님 분명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라며 고인의 의로운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씨가 구한 두 사람 중 최모(35)씨는 27일 빈소를 지켰다. 힘겹게 입을 떼며 감사를 표하는 최씨의 손을 꼭 잡고 이씨의 딸들은 “우리 엄마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수빈씨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냥 익사했다면 정말 슬퍼만 했을 것 같은데 엄마의 희생으로 두 사람이 살게 됐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