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①

입력 2015-07-29 12: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레안드로 애를리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근대미술을 주로 다루고 있으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독립적인 근대미술관이 신축되어야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31년간을 재직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형민 전 관장이 지난해 10월 직원 부당 채용 혐의로 직위 해제된 뒤 10개월째 관장 공석 상태다. 연초부터 진행한 새 관장 선임 절차가 지난달 ‘적격자 없음’으로 무산되면서 최종 후보와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원색적인 비난전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일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없는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긴급 진단하는 글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글 싣는 순서>

①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

②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

③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④흔들리는 공공미술관

⑤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





①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좌표를 잃었다.


김윤수, 배순훈, 정형민 관장 재임기간 모두가 난제를 남기고 떠났고, 평가는 답답한 수준이다. 최근 관장 선임에 있어 인사혁신처,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의 늑장인사에 대한 실망도 많았지만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다면 앞으로도 한계는 분명하다. 그간 관장의 전공은 미술사, 미술비평가, 미학자, 심지어는 기업전문가까지 선임이 되었어도 여전히 전문성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었으나 계속 책임질 일만 발생하고, 경영 실적은 이슈가 없다.



*넘어야 할 산, 법인화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넘어야 할 산은 ‘법인화’이다. 선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우리와 같은 시스템은 없다. 정부가 관장을 공모, 선임하고 현직 공무원이 수 십명씩 미술관에 발령되어 업무를 진행하는 식의 경직된 근대적 방식에서 이제 탈피해야 한다.

이번 관장 선임과정에서도 절실하게 느꼈겠지만 정부의 직접 개입은 객관적일 것 같으나 한계가 있고 경직성을 탈피하지 못한다. 담당관 역시 최선을 다한다지만 불과 몇 년을 못 넘기는 인사발령에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립기관으로서는 기증, 기부 등 재정확보와 마케팅에서도 유연하지 못하며, 지속성 있는 업무연계도 한계가 있다.

물론 미술관의 절대가치를 논하면서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본질적인 업무에만 충실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국립이 최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 미술관이 보여준 성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소수의 전시를 제외하고 수준은 기대 이하이며, 미술인을 위한 소통과 연구실적 또한 한계가 분명했다. 특정대학의 편파적인 흐름이 팽배했고, 자립도는 3~5%대 전후를 넘나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는 문체부에서도 이미 2009년에 공청회를 거쳐 그 필요성이 검증되었다. 2011년 국회에 상정하였으나 통과가 안 되고 계류 중에 있다. 물론 법인화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성격 자체를 완전히 민영화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기간 동안 정부가 그대로 예산을 지원한다. 그러나 관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이사회를 통한 지원과 견제, 후원 기능이 추가되면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법인화가 이루어진다면 공법인 성격으로서 국립체계와는 달리 미술관의 자율권이 훨씬 더 확대되고 자체적인 인사시스템, 사업기획과 추진이 가능하다. 여기에 경영관장, 혹은 부관장 제도를 도입하고 업무의 전문성, 운영체계를 확립한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발전지향적인 시스템을 갖는다.

그러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재정까지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늬만 법인으로 바뀌게 되면 결국 정부는 리모컨을 갖게 되고, 미술관은 문체부 퇴직인사들의 정류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초기 재정은 투자성 예산이 증액되어야 하며, 독립기능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립도 역시 5~10년 정도를 두고 서서히 높여나가는 형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업자본과 연계된 준 블록버스터 전시가 개최될 가능성이 짙다. 입장료 수익을 위하여 전시, 교육과정에서 강박적으로 대중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국립근대, 백남준미술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단 한 곳의 국립미술관만이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만 12개이며, 전체 국립박물관을 합치면 민속박물관, 지도, 경찰, 산림 등 40여 개관에 달한다. 정부가 얼마만큼 미술관에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비교치이다.

장기적으로는 5-6개의 국립관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1관 체계를 근대미술관, 현대 및 당대미술관 2관으로 분리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근대적 역사의 굴곡만큼이나 정체성이 빈약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대유물이 있고 막 바로 건너 뛰어 현대미술을 연결해야 하는 우리미술사의 한계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그 이유로 고대, 근대, 현대, 당대를 물 흐르듯이 잇는 역사적 흐름이 단절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열망을 반영하여 현재 덕수궁에서 상당부분 근대미술관 기능을 하고 있으나 기획과 상설전, 수장고, 교육 등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면적이다. 별도의 건물을 신축, 혹은 활용하여 근대미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분관이 진행되고 있는 청주를 비롯한 2개 도시 정도에 분관을 개설하는 방안과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기능을 국가가 지원하고 운영해갈 것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작가로서 유일한 백남준에 대한 조명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형태는 미술관, 소호의 스튜디오, 묘소, 아카이브를 한자리에 묶어 그의 획기적이고, 위트 넘치는 선구적 예술세계를 재조명한다면 그 가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파워를 발휘할 것이다.



*국립미술관 관장의 자격


법인화된 이후의 관장은 총괄적인 리더의 역할을 하지만 경영부관장, 학예실장이 양축을 형성하고 마케팅, 수집과 전시, 교육업무를 수행해가게 된다. 관장 선임 방식은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다. 개방형과 추천 제도를 동시에 구사하면서 이사회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관장 선임위원회’를 발족하여 미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보다 치밀한 검증을 거치는 것도 타당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갖는 당면 과제는 전시와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 법인화와 근대미술관 추진, 과천, 서울, 덕수궁 3관이 갖는 체계 확립이라는 외형적인 변화와 함께 대정부 조율, 내부조직관리와 의식의 재정립, 자립도 향상 등이다. 결국 미술분야의 해박한 지식과 경륜도 중요하지만 행정, 경영전략에 대한 노련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관장이 최상이다. 만능 관장은 불가능하고 규모도 과거와는 달리 대폭 확대되었다. 직제에서 경영부관장과 이사회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점은 전국의 공공미술관 전체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임기는 현재 2년, 2년, 1년 연장이 가능하여 5년이 지나면 종료되거나 처음부터 응모를 시작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어느 누구도 조직을 리드하기 힘들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소신있는 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다. 특히 기업이나 자본가들의 기증과 기부 유도, 외국과의 업무 진행에는 더욱 그러하다. 법인화 이후에는 성과에 따라 최소 10년 정도는 보장해야만 한다.

선진 외국에서는 테이트 갤러리나 모마의 장수한 관장 사례 외에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1977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1년간을 재직하였다. 구겐하임미술관 역시 토마스 크랜스 관장이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을 역임하였고, 워커아트센터의 캐시 할브레이시 관장도 1991년에서 2007년까지 16년간을 역임하다가 모마의 부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임기가 긴 만큼 업적 또한 화려하다. 1988년부터 줄곧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테이트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은 두 가지 대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하나는 1993년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를 개관했고, 다른 하나는 2000년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하여 오픈한 테이트 모던을 총괄 지휘하면서 그의 출중한 능력을 잘 발휘하였다.

최장수 관장인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의 업적은 컬렉션 기증유도가 빛난다. 헤인즈 베르구르엔 컬렉션의 파울 클레 작품을 인수하였고, 젝&벨 린스키 컬렉션의 대규모 작품들, 애넌버그 컬렉션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작품, 플로렌 쇤보른 컬렉션 등으로부터 많은 기증을 유도하였다. 루벤스, 베르메르, 반 고흐, 클리포드 스틸, 제스퍼 존스 등의 작품 또한 그의 손에 의하여 소장되었다.

또한 전시를 출판물로 이어가는 선구적인 노력으로 연간 30여권이 발간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이탈리아 정부와 그리스, 로마 컬렉션 법적 소유권에 관한 오랜 분쟁을 종료 시키고, 이탈리아에 반환토록 한 후 메트가 장기 대여 하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국가 간 난제를 해결하였다. 외에도 한국관을 설립하고, 중국관, 그리스 로마 갤러리를 확장하고 ‘아메리칸 윙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등 지금의 메트 모습을 형성하는데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된다.

물론 능력있는 관장을 선임하는 과정도 까다롭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은퇴를 발표한 후 미술관에서 관장 선임 위원회가 구성되어 1월부터 8개월 후에야 메트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던 토마스 P. 캠벨로 결정되었다.



*왜 전문인재를 양성하지 않는가?


며칠 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에 오쿠이 엔위저, 마시밀리아노 조니, 제시카 모건 등에 이어서 마리아 린드 디렉터가 선임되었다. 작년 부산비엔날레의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케플랭까지 친다면 대표적인 양 전시는 모두 외국인 총감독이다. 물론 학습효과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도가 한참 지나치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문분야 인재양성이 너무나 취약하다. 지원금 한 푼 없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척박한 현실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은 자력으로 큐레이팅과 미술관학을 터득해왔다. 작가들의 생활고도 말이 아니지만 평론가, 기획자, 학자들의 생활 또한 다름이 없다. 전 세계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넘나들어야하고, 비영리 연구와 전시의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로타, 몬테벨로 관장이 그냥 배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 백년이 넘는 문화적 토양이 쌓여지면서 그들도 많은 실수와 실험을 거듭해왔다. 그렇지만, 미술계와 정부에서도 그만큼 전문가 지원과 신뢰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할 사람이 없다는 정부의 오리무중 인사스태프 보다는 미술관 전문가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효율적인 인선과정을 마련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미술계 일만이라도 맡기고,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제도가 완벽한들, 예산이 풍부한들, 결국은 열정적인 전문가 몇 명의 뜨거운 심장에서 흐르는 파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