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맞춰보는 중일

입력 2015-07-23 16:57
중국과 일본이 겉으로는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오는 9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서로의 카드를 맞춰보고 있다.

중국은 오는 9월 3일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및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초청했다. 아베 총리는 열병식에는 참석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6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베이징에서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3대 조건을 제시했다고 23일 보도했다. 3대 조건은 태평양 전쟁 일본인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달할 것과 국교정상화 당시의 중·일공동성명(1972년), 중·일 평화우호조약(1978년) 등 이른바 4대 정치문서를 준수할 것, 그리고 무라야마 담화(1995년 전후 50주년 담화)의 정신을 계승할 것 등이다. 양 국무위원은 아베 총리가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이들 3대 조건을 만족하면 방중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으로서는 크게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는 게 마이니치의 분석이다. 야스쿠니 문제는 이미 최근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타협점을 찾은 바 있다. 무라야마 담화 건은 ‘정신을 계승하라'는 포괄적인 요구를 통해 ‘사죄'와 같은 구체적 문구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일 정상회담을 서두르는 쪽은 일본이다. 주변국 외교가 최대 약점인 아베 총리로서는 9월 말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 집단 자위권 법안 강행으로 떨어진 지지율 만회도 가능하다. 중국도 오는 9월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일본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너무 뻣뻣하게 나온다는 비판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시 주석과 아베 총리와의 앞서 두 차례의 만남을 정식 정상회담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 매번 배석자의 격을 낮추거나 회담 석상에서 국기와 테이블을 없애는 등의 ‘장치’를 뒀다. 시 주석이 왜 아베 총리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지 국민들에게 내세울 명분이나 설득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번 9월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중국 측도 ‘정상회담’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9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체면을 살려주는 일본의 가시적인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