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A 감청기술로 9.11 사전저지 가능했다”

입력 2015-07-22 21:55
지난 2000년 3월 20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글라데시 방문 중 헬리콥터로 빈촌 조이푸라를 방문, 보리수 그늘 아래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려다 막판에 취소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한 테러단체의 런던 단원이 견착식 미사일로 헬리콥터를 쏴 “클린턴을 관에 넣어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미국 정보기관들이 가로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조이푸라 방문 예정 당일, 멀리 예멘 수도 사나에선 빈 라덴의 작전본부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번호 967-1-200-578은 미국에 있는 NSA 요원들이 365일, 24시간 감청하는 최우선 목표물. 당시엔 이 전화를 누가 어디서 걸었는지 알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고 NSA는 주장한다. 9.11테러범 중 한 사람인 할리드 알 미드하르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건 전화였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는 것이다.

NSA는 미드하르와 빈 라덴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당시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이전에 그의 이름과 빈 라덴의 작전본부간 연계도 파악한 상태였다. 다만 클린턴 암살 시도일 당일 빈 라덴의 작전본부에서 울린 전화가 알 미드하르로부터 온 것임은 몰랐는데, 알았더라면 NSA가 샌디에이고 아파트에 대한 감청 허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모하메드 아타를 비롯한 미국 동부에 살던 9.11테러범들과 연계를 발견, 9.11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로 통화 상대의 전화번호, 위치, 통화 내용 등을 알 수 있는 통화 속성정보(metadata)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필요했다. 여기까지 NSA의 주장이다. 최근 시효만료됐지만 애국법 215조에 근거해 15년 가까이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논리였다.

그러나 일부 NSA 고위간부 출신 인사들에 따르면 이는 NSA가 자신들의 정보실패를 감추려는 거짓말일 뿐이라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중 한 사람인 토머스 드레이크는 ‘미드하르가 건 전화임을 알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당시 없었다’는 마이클 헤이든 전 NSA국장의 주장을 “순전한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NSA가 철통 감시하고 있는 회선으로 걸려오는 전화 하나하나에 대해 그 번호와 발신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9.11 후 NSA가 9.11 당시 어떠한 정보를 얼마나 갖고 있었는지 조사해 상원 관련 소위의 비공개 청문회에서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던 드레이크는 미드하르가 빈 라덴의 작전본부에 건 통화의 녹취록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포린 폴리시 기사의 필자에게 “우리는 최소 1996년부터 그 작전본부에 대해 철통 감청을 하고 있었다”며 “당시 NSA가 실제로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NSA에서 32년간 활동한 커크 위브도 “NSA의 실패를 감추려는 것”이라며 통신사들에 요금청구를 위한 메타데이터가 있는 만큼 당시 NSA가 통신사의 기록을 알아보기만 했어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기술능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태만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대상 도청활동의 자동화를 책임졌던 윌리엄 비니는 빈 라덴의 작전센터와 같은 최고 감청 대상에 대해선 여러 곳에서 다중 감청을 하면서 우선 녹음하고 가능한 한 신속히 녹취록까지 만든다고 설명했다.

통신이 인공위성을 통하든 유선을 통하든, 통신사들이 감청 대상 전화기의 통신 내용을 “NSA의 녹음기로 곧바로 넣어준다”는 것이다.

NSA는 통신사 경영진도 모르게 직원들의 협조를 얻어 위성 내부에도 접근, 원하는 전화번호를 선정해 도청한 내용을 비밀리에 NSA의 감청설비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고 비니는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고위 간부 출신에 따르면, NSA는 빈 라덴이 사용했던 위성전화의 서비스업체 인마샛(INMARSAT)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구글, 야후 등의 주요 인터넷 업체들로부터 사용자 자료를 수집할 때 사용한 NSA의 프리즘 프로그램과 유사한 감청 장치를 인마샛 감청에도 사용했다.

NSA는 또한 아랍에미리트(UAE)에 본부를 둔 위성통신업체 투라야(Thuraya)가 전 세계 160여 개국에 서비스하는 이동통신도 도청할 수 있었다.

투라야는 이동통신 신호를 암호화했지만 NSA는 오래 전에 이를 해독할 수 있었다. NSA가 투라야의 암호를 깬 사실은 “심부 국가(deep stste. 국가내 국가 역할을 하는 은밀한 조직을 의미) 기밀”이었다는 것.

그는 “우리는 (위성통신을) 마음대로 감청할 수 있었다”며 “들어오는 것이든 나가는 것이든, 대화가 문자 그대로 생중계됐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NSA는 빈 라덴의 작전본부를 들고나는 모든 전화를 감청할 수 있었으며 거기엔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건 221건의 전화도 포함됐다는 뜻이라고 포린 폴리시는 말했다.

9.11 이전 NSA의 문제 가운데 또 하나는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를 중앙정보국(CIA) 등 다른 정보기관들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의 토머스 드레이크는 이 사실을 상원 소위 보고서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NSA 지도부에 의해 저지됐고, 끝내는 청문회 출석 대상에서도 빠졌다.

NSA가 정보를 독점한 채 공유하지 않은 사실은 9.11 이전 CIA에서 빈 라덴 전담반을 책임졌던 마이클 슈어에 의해서도 확인된다고 포린 폴리시는 전했다.

NSA가 CIA와 정보공유를 거부하는 바람에 CIA가 중동에서 독자적인 위성통신 도청 시설을 구축하긴 했으나 “양방향 대화가 아닌 한쪽이 말하는 내용만” 들을 수 있어서 NSA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약 250건의 이메일 요청에 “단 한 건의 답도 없었다”고 슈어는 설명했다.

포린 폴리시는 NSA가 9.11 테러음모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당시 이미 갖추고도 실패한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지난 십여 년간 ‘기술적 능력이 없었다’는 거짓말을 퍼뜨렸으며, 결과적으로 미국민의 통신 내용을 무차별 감시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