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 사진들이 붙어 있는 냉장고,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는 갖고 놀던 인형을 옆에 아무렇게나 두고 엄마 몰래 콩을 골라내느라 바쁘다. 상 밑에는 아이가 골라낸 콩이 흩어져 있고, 아이의 상상 속 친구 토끼가 국그릇을 엎으려 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꼬닐리오’의 ‘몰래몰래’라는 작품이다. 빛바랜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연필로 그린 그의 일러스트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웹툰에 이어 ‘이야기가 있는 그림’인 일러스트(일러스트레이션)가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러스트를 대중문화로 끌어낸 데에는 네이버가 제공하는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 ‘그라폴리오’(www.grafolio.com)의 역할이 컸다. 그라폴리오에는 현재 약 8000명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고, 1만점이 넘는 작품이 수록돼 있다. 최근에는 웹툰처럼 ‘요일제 연재 시스템’이 도입됐다. 인기 작가 중 8명은 네이버로부터 원고료를 받고 주 2회씩 정식 연재를 하고 있다.
그라폴리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퍼엉’(Puuung)이다.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Love Is…)’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이다. 지난해 그라폴리오로 데뷔한 여대생인데 등록된 팬만 2만6000명이 넘는다.
퍼엉은 주로 집 안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함께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낮잠을 자고, 요리를 하는 등 평범한 장면들이다. 따뜻한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행복감, 사랑스러움, 편안함, 위로를 얻어가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 퍼엉은 지난달 16일 그라폴리오에 연재 중인 작품들로 글로벌 펀딩에 참여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한 달 동안 70여개국 1800여명의 후원자로부터 12만6000달러(약 1억4500만원)를 모았다. 퍼엉의 모금액은 킥스타터 일러스트 부문 3위에 올랐다. 후원자들은 그의 일러스트 엽서집, 그림책 등을 제공받게 된다.
움직이는 일러스트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도 있다. 작가 타그트라움은 ‘움직이는 환상동화’를 연재하고 있다. 동화적 상상력과 유쾌함이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나무에 물풍선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기다란 막대로 물풍선을 터뜨리면 물이 쏟아지는 식이다. 애니메이션 기법을 접목시켜 그림에서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구현했다. 날개 달린 꽃, 반짝이는 딱정벌레, 우주를 담고 있는 풍선껌 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인기 일러스트 작품들에는 일상, 어린 시절 따뜻했던 기억, 사랑과 이별, 위로 등이 주로 담겨 있다. 인기 작가 현현은 특히 비 오는 풍경과 이별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일러스트 작품집을 출간한 박정은 작가도 ‘뜻 밖의 위로’라는 제목으로 일러스트를 연재하고 있다.
그라폴리오는 상품의 틀에 갇혀 있던 일러스트를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그동안 일러스트는 책의 삽화로 쓰이거나 엽서, 휴대폰 케이스, 달력, 수첩, 티셔츠 등에 사용되는 예쁜 그림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라폴리오를 통해 일러스트를 즐기고 찾아보는 독자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성표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 교수는 “그라폴리오를 통해 일러스트가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널리 알려지고 대중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대중문화 신흥 트렌드로 자리잡은 일러스트레이션
입력 2015-07-21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