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사이다’ 용의자 박 할머니, 구급차 왔는데… 수상한 행적

입력 2015-07-21 10:37 수정 2015-07-21 11:15
YTN 뉴스화면 캡처

‘농약 사이다’ 사건의 피의자 박모(82)씨가 사건 전후 보인 수상한 행적이 드러났다. CCTV와 사건 당시 출동한 구급차의 블랙박스 등을 분석한 결과다.

20일 경북 상주경찰서에 따르면 박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13일 마을회관에서 피해 할머니들과 화투를 하다 이중 1명과 다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사건 당일인 14일 오후 2시쯤 박씨와 피해자 6명은 모두 마을회관에 모였다.

박씨는 이날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마을회관 우회도로를 이용했다. 이 길을 따라 마을회관에 도착하려면 전날 자신과 다퉜던 피해 할머니의 집을 지나게 된다. 경찰은 박씨가 범행을 실행에 옮기기 전 자신과 다퉜던 할머니의 집안을 살펴봤다고 판단했다.

오후 2시43분쯤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마을회관에 있던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나눠마셨다. 이중 신모(63)씨만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마을회관 밖으로 나왔다. 피의자 박씨도 신씨를 쫓아 밖으로 나왔고, 이때 마을회관으로 들어오던 또 다른 박모(63)씨가 신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신고자 박씨는 남편인 마을 이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던 신씨는 마을회관 옆 가건물과 피의자 박씨가 타고 온 전동스쿠터 사이 공간에 쓰러졌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다. 하지만 박씨는 119 구급차가 마을회관 진입로로 들어서는 순간 구급차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구급대원들은 바깥에 쓰러진 신씨만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때 박씨가 마을회관 앞 계단에 걸터앉아 구급차가 나가는 반대방향의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구급차가 왔으면 신씨가 쓰러진 곳과 추가 피해자 여부 등을 구급대원들에게 적극 알려야 하는데 피의자는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떠나기 전까지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50여분쯤 뒤 이장이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머지 할머니 5명 중 4명은 거실에서, 1명은 주방에서 토사물과 거품 등을 내뿜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이들은 이장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피의자가 직접 살충제 원액을 다뤘다는 유력 증거도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박씨가 입었던 상·하의, 전동스쿠터 손잡이 등에서 사이다에 든 살충제와 같은 성분이 검출됐다.

피의자 가족은 “피해 할머니들이 내뱉은 거품과 토사물을 닦아주다 묻은 것이다”고 주장했지만 숨진 할머니 위액과 토사물 등 타액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곳도 바지 주머니 안쪽, 바지 밑단, 상의 단추 부분 등으로 피의자가 토사물을 닦은 곳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박씨는 지난 14일 오후 2시 43분쯤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리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6명이 나눠 마신 사이다에 고독성 살충제를 탄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 가운데 신모(65)씨만 의식을 되찾았을 뿐 정모(86)씨 등 2명이 숨졌고 한모(77)씨 등 3명은 위중한 상태다.

박씨와 변호인 측은 “살충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 “누군가가 고의로 누명을 씌우려고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