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억원 날린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 막전막후

입력 2015-07-20 18:02
“사장님이 아주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국석유공사 최모 이사는 2009년 4월 이사회에서 이런 우려를 표시했다. 강영원 당시 석유공사 사장은 ‘2009년 석유생산량’을 전년 대비 2배 이상인 3520만 배럴로 잡았다. 많은 이사들이 이 안건에 반대했다. “본부장들이 다 어렵다고 하는데 공격적으로 (목표치를) 잡으려 한다” “나중에 달성 못하면 공기업 평가에서 꼴등을 받게 된다”는 의견이 속출했다. 이사들의 경고에도 강 전 사장은 안건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석유공사는 이후 해외자원개발업체 인수에 적극 뛰어들었다. 2009년 6월 스위스 석유회사 아닥스 인수에 실패하자 두 달 뒤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를 추진했다. 20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하베스트 인수 과정은 사실상 강 전 사장의 평가 실적 달성을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강 전 사장은 하베스트 인수를 추진하며 10월까지 거래를 마치도록 지시했다. 검찰은 그가 2009년 공기업 경영평가에 인수 실적을 포함시키려 한 것으로 해석했다. 인수가 속도전으로 진행되면서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요구 조건에 끌려 다녔다. 당시 한화 기준 2조6900억여원을 제시했지만 하베스트는 3조2000억여원을 요구했다. 요구에 맞추기 위해 하베스트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야 했다. 기술자문사가 “구체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기재한 하베스트의 추가 매장량 가치를 높이는 등 애초 평가보다 2246억원을 늘려줬다.

주도권을 쥔 하베스트는 10월 14일 계열사인 날(NARL)을 함께 인수할 것도 요구했다. 강 전 사장은 협상이 결렬되자 10월 17일 귀국길에 오른다. 다음날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나 ‘변경된 제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했다. 최 전 장관은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강 전 사장은 이후 ‘하베스트 제안에 맞춰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하베스트가 제시한 계약 기한까지 고작 4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석유공사의 주 자문사 메릴린치는 결국 하베스트가 준 수치를 그대로 적용해 날에 대한 자산가치 평가를 진행했다. 이 수치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했던 생산성 향상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경우를 전제한 것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하베스트의 요구액에 맞춰 담당자가 거꾸로 날의 자산가치를 정하는 비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21일 하베스트와 날을 4조5600억원에 인수했다.

강 전 사장은 ‘부실 인수’ 의혹에도 적극 대응했다. 석유공사 감사실은 29일 “짧은 기간 자산가치를 산정한 데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강 전 사장은 “적정실사를 정확하게 다 들여다봤다. M&A팀에서 오히려 보수적으로 봤다”고 적극 해명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냈다. 인수계약을 완료한 강 전 사장은 전년도 C등급을 받았던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검찰 측은 하베스트 인수 과정을 ‘석유공사 대형화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기대만으로 진행한 무리한 인수’라고 규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강 전 사장을 국고에 55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