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일본이 주어가 된 일제강점기? '실국시대'라고 표현해야

입력 2015-07-20 10:26 수정 2015-07-20 10:38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행사들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나라는 나라를 빼앗은 일본과의 과거 역사관계에서 바른 용어를 가려서 사용하여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해당하는 나라를 잃은 시절 1910년에서 1945년까지를 우리는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광복이 되고 나서 일본을 왜국이라고 지칭하며 ‘왜정시대’라고 하다가 ‘일정시대’로 바뀌어 쓰이더니, 요즘은 ‘일제강점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한 시기’라는 이 말은 우리 역사 시대구분에 일본이 주어로 등장하고 우리나라가 목적어가 되어 생략된 채 주객이 바뀐 용어로서 잘못된 것이다. 나라를 넘겨주고 국권을 빼앗겼는데 전쟁을 통하여 땅을 차지하였다는 ‘강점’이란 용어를 쓴 것도 틀렸다. 이 시기를 우리말로 ‘나라 잃은 시대’라고 맞는 시대용어로 바꾸어 사용하여야 할 것이고 아니면 ‘실국시대’라는 한자말로 고쳐 분명하게 사용하여야 민족정기가 되살아 날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실국시대’로 표현되어야

일본은 부왜인(附倭人; 일본에 아부하던 사람)을 앞세워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강압적으로 빼앗아 놓고 의분이 일어나지 않을 가치중립적 의미의 용어인 ‘일한합방’이라고 하였다. 아직도 일본이 퍼뜨린 이 용어의 순서를 바꾸어 ‘한일합방’이라고 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다. 이 말은 남의 나라를 강탈하고 ‘한국이 일본과 나라를 합했다’는 말인지 ‘한국과 일본이 나라를 합쳤다’는 말인지 어리벙벙하게 호도하여 붙인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하였다. ‘합방(合邦)’은 두 나라가 합의 아래 평등하게 합한 것이다. 1910년이 ‘합방’이라고 하면 1945년은 ‘한일 분리’가 되어야 인과관계가 맞는다. ‘8.15해방’이란 말도 적당하지 않다. ‘해방’은 ‘속박’의 상대가 되는 말이다. 을유년(1945년)에 국권을 회복한 것을 뜻하는 ‘을유광복’이란 말이 맞는 말이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처음 공식관계를 가진 것은 병자년(1876년) 정월 11일에 왜군들이 강화도로 쳐들어와 부산 등 세 항구에 일본사람이 와서 살 수 있게 내어 놓으라고 하며 일본이 ‘수호조규’라는 제목의 문서를 내놓았다. 그 내용은 세 항구에 일본인들이 와서 살게 하는 식민지 겁탈문서였다. 당시는 ‘병자왜란’으로 강요로 맺은 불평등 세 항구 겁탈약조(겁약)이었다. 그것을 ‘강화도조약’이니 ‘병자수호조약’이라고 얼버무리거나 미화하면 되지 않는다.

‘8.15해방’이 아닌 국권회복의 ‘을유광복’이 되어야

그 일 이후 1910년까지 34년 동안 열 두 번의 한일간의 문서가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아 간 1905년 ‘한일협상조약’은 ‘을사늑약’이라 불러야 마땅하고, 일본인 관리(차관) 등용을 강요한 1907년 ‘한일협약’은 내용을 알도록 ‘왜인차관등용협박서’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일본은 1910년 우리 조정을 협박하여 나라를 빼앗아 집어 삼키는 ‘병합조약’을 맺고 ‘일한합방’이라는 엉터리 용어를 만들어 썼다. 이것을 우리나라가 주체가 된 ‘경술국치’라는 역사용어를 바로 잡고 학교에서는 사건의 본질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기미년(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시작되어 약 3개월간 전국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만세의거가 있었는데 그것을 ‘3.1운동’이라고 하며 ‘3.1절’로 기념한다. 시작한 날짜에 만세 부른 것을 무슨 운동(스포츠)으로 조롱하며 일본이 붙인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그대로 쓰기보다 의로운 거사라는 고귀한 뜻을 살릴 수 있는 ‘기미만세의거’라고 하고 ‘만세절’이라고 고쳤으면 한다.

아프리카 대륙 등에 식민지로 지내다가 처음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독립’이라고 하는데 우리처럼 나라를 빼앗겼다가 도로 찾는 것을 일본이 퍼뜨린 ‘독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독립운동’ ‘독립운동가’라고 말하는 데 이것보다도 ‘광복의거’라 하고 광복을 도모한 사람을 ‘광복열사’ ‘광복의사’라고 바로 잡았으면 한다.

말이 생각과 행동에 영향 미쳐

말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크게 끼친다는 말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은 자기들 입장에서 역사용어를 붙여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광복절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패전기념일인데도 일본은 전쟁이 끝난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상대가 있는 역사용어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쓰는 일방통행어이므로 다 같은 말로 쓰지는 않는다. 역사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역사관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하여 역사용어부터 바로 잡는 것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서둘러야 할 일이라고 본다.

조헌국 진주교회 장로. ‘진주에 뿌려진 복음’ ‘진주노회사’ 등 경남 서부지방 교회 역사에 관한 다수의 저술을 했다. 진주여고 교장, 진주시교육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