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또다시 ‘국가정쟁(政爭)원’이 됐다.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뭇매를 맞은 데 이어 이번엔 해킹 프로그램 구입으로 다시 정치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정보기관’이 아니라 ‘정치기관’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국정원은 2012년 대선을 전후로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치명적인 정치행위’를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유죄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다시 확정하라는 취지여서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초유의 사태도 주도했다. 2013년 6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남북정상회담 전문을 전달하면서, 남북 정상 간의 내밀한 대화가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공개됐다. 외교적 파장이 컸고, 여야 관계는 극한 대치로 이어졌다. 당시 남재준 원장은 공개 배경에 대해 “야당이 자꾸 공격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화록 공개로 국정원이 다시 정치에 발을 들였다는 비판이 컸다.
국정원은 간첩 조작 사건에도 개입했다. 2013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중국 출입경 기록을 조작해 간첩으로 몰아간 이 사건은 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인 박원순 시장을 겨냥한 ‘정치적 행위’라는 해석을 낳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이후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결국 남 전 원장은 지난해 5월 경질됐다.
이런 국정원의 ‘전력’ 탓에 이번 해킹 프로그램 구입도 파문을 낳고 있다. 국정원은 이탈리아 업체의 해킹 프로그램을 대북 공작용으로 구입했다고 해명하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사례는 있었다. 김영삼정부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씨는 ‘총풍’과 ‘북풍’ 등 공안사건 조작 및 대선자금 불법모금에 연루돼 기소됐고,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건씨도 불법 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이번처럼 국정원이 정권 내내 정쟁의 ‘주체’가 된 적은 찾기가 어렵다.
박근혜정부 들어 정치권에선 국정원 개혁 논의가 국회 회기 때마다 이어졌다. 2013년 당시 여야는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를 구성해 7개의 법을 통과시켰지만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광철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수집권을 준 것이 화근”이라며 “해외와 국내 정보수집을 나눠 이원화나 대공수사 기능을 검찰·경찰로 넘겨 국정원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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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19 16:56 수정 2015-07-19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