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온라인 기사에 댓글을 달고, 페이스북 등 SNS계정에 사진과 글을 올린다. 이렇게 자유롭게 올리지만, 온라인에 한 번 남기게 된 흔적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순식간에 곳곳으로 퍼 나르기가 이뤄지면서 통제를 벗어나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온라인 흔적지우기가 신종사업으로 떠오를까.
일본 작가그룹 유클리드(사토 마사히코+키리야마 타카시)의 미디어 설치작품 ‘지문의 연못’은 그런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인 것 같다. 내 것이면서도 통제 불능이 돼 버린 ‘디지털 지문’을 온전히 수중에 두고픈 현대인의 소망이 읽혀진다.
인터랙티브 미디어판에 작고 검은 원이 점점이, 혹은 무리지어 유영한다. 연못의 올챙이 같은 이 원은 누군가의 지문이다. 작품 앞 지문인식기에 손을 얹으면, 지문이 입력돼 다른 지문들 사이에 섞여 떠돈다. 마치 온라인에 올린 개인의 디지털 기록처럼. 현실과 차이가 있다면, 다시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얹으면 지문이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미디어는 정보의 감시와 통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빅 브라더’였다. 21세기 미디어는 참여와 공유의 쌍방향 소통 수단으로 이해돼 왔다. 과연 그럴까.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가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실체를 국내외 미디어아티스트들이 탐구했다. 유클리드를 포함한 국내외 작가 11명이 참여한 ‘슈퍼전파-미디어바이러스’전이 그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마련했다. 미디어 상에 부유하는 메시지들이 바이러스처럼 급속도로 확산돼 가변적인 무엇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다.
노재운의 신작 ‘몬스터 마인드’는 익명성을 내세워 마구잡이로 표출되는 분노의 감정을 ‘몬스터’로 비유해 형상화했다. 연체동물을 연상시키는, 무정형 구조물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인세인박은 이데올로기(이즘)는 가고 이미지만 남은 현 세태를 언어적 유희를 통해 표현하는 미디어설치작품을 내놨다. 차지량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전파되어 공유되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한국 작가, 해외 작가 할 것 없이 ‘미디어 바이러스’를 우려스럽게 본다. 한국 작가들은 대체로 시각적 조형성을 내세운 은유적 작품을 출품했다. 외국 작가들은 보다 스토리적이다. 유클리드의 작품에서도 이야기가 연상되는 것처럼 말이다. 스웨덴작가 앤 소피 시덴의 작품 ‘끈끈한 바닥’은 ‘빅 브라더’ 이미지를 차용했다. 작가는 선술집에 9대의 CCTV를 설치해 그곳 손님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찍었다. 편집된 장면을 작품을 통해 보면서 관객은 그들의 일상을 감시하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영국 작가 나타니엘 멜로스의 영상 ‘우리집’은 드라마라는 친근한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다. 연관 없는 장면들을 맥락 없이 이어 붙여 파편화된 매스미디어의 부분적인 구조 안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었다.
전시는 지난 3월 서진석 관장 취임 이후 첫 전시다. 국내 작가 위주로 진행되던 전시였으나 해외 작가를 대폭 보강했다. 10월 4일까지. 성인 4000원. 청소년 2000원(031-201-850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백남준 아트센터 슈퍼 바이러스
입력 2015-07-19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