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단독주택단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지침에는 담장을 설치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성남시 의도가 담겼다. 결과는 어땠을까.
비평가 이영준 계원대 교수의 사진작품 ‘왜 판교는 창문을 싫어할까’는 도시인의 이중적 욕망을 드러낸다. 아파트의 획일화되고 단절된 주거공간을 벗어나 마당과 이웃이 있는 주택에서 살고자 분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 공간을 지키고자 하는 건축주들의 욕망은 이곳에서도 여전해 가급적 창 크기를 줄인 ‘내향적인 주택’이 탄생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하는 건축의 사회적 실험을 주제로 건축기획 ‘아키토피아의 실험’전이 열리고 있다. ‘건축(Architecture)’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건축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주제로 삼고 있다. 서울 세운상가,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파주 헤이리아트밸리, 성남 판교신도시 등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아키토피아의 욕망이 투사된 장소를 대상으로 삼았다. 건축가, 사진가, 비평가, 미디어아티스트, 만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개발시대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건축이 저성장 시대의 오늘날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비평적 성찰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세운상가는 1968년 완공된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우리나라 도시재개발의 효시로 건축가(김수근)와 정치인(김현욱 서울시장)이 한 배를 타고 산업화 초입의 도시문제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아트밸리는 효율성을 내세운 마스트플랜 류의 기존 도시개발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나왔다. 여러 건축가들이 조율해 출판인과 예술인의 ‘공동촌’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종석의 영상작품 ‘파주출판도시의 여름’은 유럽의 도시 같은 여유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자족도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반쪽도시라는 점을 그래픽 작품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판교신도시의 단독주택단지는 아파트 평수로 재는 성공의 잣대를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한국인의 변화된 욕망이 집약된 곳이다. 무려 2000세대 필지가 공급됐고,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해 ‘그림 같은 집’을 지어줬다. 얼마나 멋진 집인가로, 성공을 확인하는 경쟁의 결과물로써 판교신도시가 대규모 주택 전시장이 되어 버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건축가들이 아키토피아를 꿈꾸며 도시 설계에 참여했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는 따갑다. 판교신도시 개발 이면에 자리했던 부동산 투기가 빠질 리 없다. 최호철의 스케치작품 ‘판교택지개발지구-돈이 자라는 땅’이 그런 예이다. 이처럼 전시는 건축가들의 낙관적 태도와 사진가들의 비판적 시선이 대조를 보여 흥미롭다. 서울시가 소장한 세운상가 청사진 도면이 50여년 만에 공개됐고,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아트밸리 관련 미발표 자료들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과천관에서 같이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강홍구(59), 박진영(43)의 사진전 ‘우리가 알던 도시’전도 놓치기 아까운 전시다.
두 작가는 재개발과 재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라짐과 불안이 일상화된 도시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강홍구는 디지털 합성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삼은 반면, 박진영은 다큐멘터리 사진 전통에 충실한 아날로그 사진을 주로 찍어 왔다. 작업 방식은 대조를 보이지만 남겨진 잔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박진영의 ‘방사성 물질 옮기기(Moving Nuclear)시리즈’의 전시방식도 눈길을 끈다. 해경선 복도의 둥근 창을 통해 찍은 사진들이 해경선을 연상시키는 전시장 구조물과 맞물려 작품이 주는 분위기에 바로 빠져들게 한다. 10월 11일까지(02-2188-600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아키토피아의 실험’ 건축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디?
입력 2015-07-19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