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난민 문제로 온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추방 위기에 몰린 난민 소녀에게 “도와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게 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리스 사태로 ‘냉혈’ 이미지가 강해진 메르켈 총리가 다시 한 번 잔혹성으로 국제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메르켈 총리가 전날 독일 북부 항구도시 로스톡의 한 학교를 방문해 청소년들을 만나는 장면이 현지 NDR방송의 전파를 탔고 냉정한 말로 난민 소녀에게 상처를 줬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독일에서의 좋은 생활’을 주제로 벌어진 토론에서 일어났다. 림이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출신 소녀는 유창한 독일어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목표가 있고 그들처럼 공부하고 싶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슬프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추방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두려움을 내비쳤다. 림은 4년 전 레바논 난민 캠프에서 가족과 함께 독일로 건너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소녀의 절망을 외면했다. 메르켈 총리는 “가끔 정치라는 건 어렵다”면서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레바논 난민 캠프에는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있고, 독일이 모두 구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림이 자신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자 진행을 중단했다.
메르켈이 림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지만 여론은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메르켈이 난민의 절망감을 부추겼다” “정부는 공감 능력이 없다”는 글이 봇물을 이뤘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메르켈이 (소녀를) 쓰다듬는 대신 했어야 할 일’이라는 칼럼을 통해 “메르켈 총리는 림에게 독일에 계속 머물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난민이 독일에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독일에 사는 외국인 700만명은 2012년 기준 독일 국내총생산(GDP)을 220억 유로(약 27조4900억원) 가량 성장시켰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올해만 45만건의 난민 신청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신청 건수의 두 배 수준이다. 영국에서도 난민 추방 문제는 큰 이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어린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아프가니스탄 출신 청소년들이 출생국으로 대거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17일 보도했다. 영국의 양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아프간에 대한 기억이 없을뿐더러 연고자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여서 인권 단체의 비난을 받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난민 울린 메르켈
입력 2015-07-17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