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다시 가보니']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은 어디로 갈까

입력 2015-07-17 10:42 수정 2015-07-17 22:48

[사진설명](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노선 중턱에서 내려다 본 하부정류장 예정지 / 케이블카 중간지주가 들어설 자리에서 올려다 본 하늘. 케이블카로 인해 없어질 풍경이다 / 케이블카 중간지주 예정지에 꽂힌 깃발 표식 / 상부가이드타워 예정 후보지를 표시한 미니 플래카드 / 중간지주 예정지 구획을 표시한 끈 /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에 깃든 식물과 동물, 동물의 흔적. (순서대로) 세잎종덩굴, 고광나무 꽃, 금마타리, 함박꽃나무 꽃, 참조팝나무 꽃, 꽃개회나무 꽃, 다람쥐, 삵의 똥 / 오색케이블카 노선도(강원도 제공) / 케이블카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도로변에 내건 현수막 / 양양=구성찬 기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노선 산행 르포]
설악산 끝청봉(해발 1610m)에서 서남쪽으로 430m 떨어진 해발 1480m 사면. 분비나무, 사스레나무, 잣나무, 신갈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닫지 않았던 곳답게 길이 희미하다. 이곳은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부지임을 알리는 ‘상부가이드타워4’라고 적힌 미니 플래카드와 띠 울타리가 숲의 정경과 부조화를 연출한다. 오색 약수터에서 이곳까지 3.5㎞의 케이블카가 완공된다면 내린 탑승객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방 200m 앞까지 지그재그로 설치된 나무데크 산책로와 전망대, 그리고 울창한 숲이 전부다. 높이 2~3m로 설치할 예정인 전망대에서도 조망은 확보되지 않는다.

◇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천국
지난달 22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사무소의 허락을 얻어 직원들과 함께 ‘오색케이블카’ 건설예정코스를 따라 산행을 했다. 날씨는 맑았고, 가시거리는 약 20㎞로 좋은 편이었다. 오색약수터에서 상부정류장 부지까지 약 3.6㎞를 걸어오는 동안 세 군데의 쉼터들에서도 조망은 남설악산과 내설악 일부에 그쳤다. 귀때기청봉도 옆면만 겨우 보였을 뿐이다. 화채능선, 공룡능선, 용아장성, 수렴동계곡 등은 케이블카 탑승객들은 갈 수 없게 돼 있는 끝청봉까지 가야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블카에 대한 환경부 가이드라인은 탑승객의 연계산행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게 지켜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굳어진다.
산책로 예정지 끝에서부터 203m 떨어진 곳에 끝청이 있다. 동행한 공단직원은 “왜 하필 조망이 좋지 않는 이 노선을 택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짧은 거리로 대청봉에 가장 가깝게 가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양양군 관계자는 산책로의 경사와 전망대를 합쳐서 해발 1530m 위치에 전망데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청, 그리고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동안 꽃이 만개한 꽃개회나무 군락이 베푸는 향기와 빛의 향연을 만끽했다. 올해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뭄이 닥친 것이 역설적으로 번식 본능을 자극한 것일까. 코가 얼얼할 정도로 강한 향기가 미풍에 실려 왔다.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온 꽃들이 문자 그대로 꽃 터널을 이뤄서 우리는 가지와 꽃을 제치면서 나아가야 했다. 데크 산책로가 설치되면 개활지, 즉 탐방로 주변을 선호하는 꽃개회나무 상당수는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
상부정류장부터 끝청까지는 물론, 그 이전 중간지주4, 5, 6번이 세워지는 비법정탐방로 전체가 야생동식물의 천국이다. 탐방로의 흔적이 없거나 희미하다. 평평하게 다져진 땅이 아니라 비탈진 사면을 대각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발굽이 사면을 걷기에 적합한 산양이나 멧돼지에게는 좋은 서식지이자 이동통로지만, 사람에게는 무척 힘든 길이다. 케이블카는 중간지주 3번까지는 기존의 오색약수터(남설악탐방지원센터)~대청봉 탐방로를 따라 엇갈렸다 만났다를 반복하면서 올라갈 예정이다.

◇ 설악산 전체가 법정 보호종들의 서식지
등산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 1.7㎞를 지나 온 OK목장 쉼터(해발 910m) 직전에 비법정탐방로로 접어들었다. 미끄러운 급경사면을 올라가면서 최근 케이블카 관련 인사들이 오르내리며 버린 듯한 담배꽁초가 많이 보였다. 법정탐방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주솜대, 금강초롱, 애기하늘나리, 두루미꽃 등이 보인다. 잣나무는 25m를 넘는 거목도 눈에 띈다. 상부정류장이 가까워지자 참배암차즈기, 토현삼 등 한국특산종이 나타났다. 희귀식물인 만병초,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눈측백나무, 털진달래도 관찰된다. 해발 1362m 지점에서 본 삵의 똥은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동행한 공단직원이 말했다. 녹색연합이 올해 초 무인카메라 등을 설치해 관찰한 결과 이 곳에는 멸종위기종인 산양, 삵, 담비는 물론 하늘다람쥐, 긴꼬리딱새, 까막딱따구리 등 다양한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양군은 이 구간이 산양의 주서식지가 아니라 이동통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산양처럼 큰 포유동물에게는 설악산 전체가 서식지라고 봐야 한다. 이동통로와 서식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환경부의 ‘자연공원 삭도 설치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 법적 보호종의 서식처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다. 설악산도 여기에 당연히 해당되기 때문에 환경부가 이곳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면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는 자가당착이 된다. 케이블카가 건설된다면 산양과 같은 야생동물들은 인기척과 소리에 무척 민감하므로 케이블카 소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사람에게는 편의와 즐거움 차원이지만, 생태계에 큰 교란이 일어났을 때 야생동물은 적응, 또는 멸종하느냐는 중차대한 기로에 선다.

◇ 우려되는 훼손의 확대와 위기의 고산생태계
건설과정에서의 산림 훼손도 문제지만, 상부정류장과 근처 인공시설은 또 다른 시설, 즉 데크 탐방로를 건설할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왕복 1만4500원의 케이블카 탑승료를 지불한 탐방객들은 전망대에서 눈앞에 빤히 보이는 끝청까지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도 요청할 것이다. 이를 빌미로 케이블카 사업자들이 적자를 면하기 위해 대청봉 연계산행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지자체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배겨낼 재간이 없다. 걸어서 올라온 사람에게는 등정을 허용하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에게는 안 된다면 차별이라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상부정류장에서 대청봉까지 1.4㎞ 구간 대부분은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이라서 4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색약수터~대청봉 구간은 설악산 정상으로 가는 탐방로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길이다. 답압과 훼손압력이 큰 곳에 시간당 최대 855명, 하루 최대 1만 명의 관광객이 추가로 투입된다면 탐방로가 넓어지고, 희귀식물과 고산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것이다. 더욱이 끝청~중청~대청봉 일대는 북방계 식물들이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노란만병초, 홍월귤,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등대시호, 세잎종덩굴, 장백제비꽃 등 멸종위기 및 희귀식물들은 설 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인허가의 키를 쥔 환경부는 지난 4월29일 양양군으로부터 받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신청서에 대한 공원위원들의 현지실사와 삭도(케이블카)전문위원 의견수렴을 거쳤다. 이달 말까지 검토보고서를 완료하고, 내달 중 국립공원위원회를 개최해 사업추진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환경부차관이 위원장인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은 사실상 환경부가 좌지우지한다. 국립공원위원회는 강원도와 양양군이 2012년 6월, 2013년 9월 두 차례 신청한 케이블카사업을 대청봉과 법정 보호종 서식지 훼손 우려를 들어 부결한 바 있다.

◇ 정부의 정책 혼선과 첨예해진 찬반 갈등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산지관광특구제도를 도입하고 설악산과 남산에 케이블카 추가설치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이후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환경부의 입장은 과거의 ‘1개 산 1개 시범사업 원칙적 허용 속 사실상 불허’에서 허용 쪽으로 선회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고, 과거에도 국립공원 내 시범사업은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면 허용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분위기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오색케이블카를 완공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인허가 절차를 졸속으로 서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색케이블카사업을 둘러싼 찬반 갈등은 첨예해 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14일 과천정부청사에서 환경부가 주최한 공청회에 불참했다. 한 달 만에 찬반을 논하는 게 촉박하니 공청회를 연기하자고 요청했지만, 묵살됐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자의 이익단체인 삭도협회 관계자가 포함된 민간전문위원단을 재구성하라는 요구도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김진하 양양군수를 포함한 도의원 등 300여명과 지역주민들이 모인 양양군케이블카추진위원회는 이날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주민 16명은 삭발식까지 거행했다.
반대진영에서는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타당성마저 없다는 게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런 판단은 케이블카를 한 번은 타겠지만, 두 번은 타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설악산은 비경을 드러내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양양군 김호열 오색삭도추진단장은 “최소한의 수요예측에 따르더라도 1000만 명이 한 번은 탈 것이기 때문에 예상 운행가능일수 259일 동안 연간 수용한도인 50만 명씩 실어날아도 20년은 간다”고 말했다.

◇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
중청대피소를 거쳐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오는 동안 오색케이블카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자연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해하는 걸까. 지방차지단체의 경제적 자립은 관광산업만으로는 어차피 이루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관광사업의 모델을 하나씩 더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순천만의 친환경적 개발을 통해 생태관광의 모범사례가 된 순천시는 “지역주민이 행복해야 방문객도 행복하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설악산 관광객의 80%가 수도권 주민이라고 한다. 그들의 단기적 욕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보다 우선 지역주민의 진정한 필요에 부응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면 관광객은 저절로 모여들게 돼 있다.
양양=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