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 출신 귀농인 정화려씨, 12년 친환경 영농일지 ‘유월농장’ 펴내

입력 2015-07-14 18:18
친환경 영농일지 ‘유월농장’ 표지. 유월농장 제공
저자 정화려씨가 2009년 4월 9일 단양 자신의 밭에 감자를 심기 위해 비닐을 씌우고 있는 모습.
2007년 3월 2일 파종한 고추 모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
“해가 지면 고추 모에 이불을 덮어줍니다. 솜이불을 덮기 전에 비닐을 먼저 덮어줍니다. 밤기온이 10℃ 정도 되는 4월 말까지는 아침저녁으로 비닐과 이불을 덮고 걷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물은 수시로 주어야죠.”(2003년 4월 6일)

“고추 모에 진딧물이 생겼습니다. 작년에도 진딧물 때문에 꽤 고생을 했던 터라 밭에 심기 전에 잘 막아야하겠습니다. 우유를 뿌려보고 그래도 못 잡으면 비눗물을 뿌릴 예정입니다.”(2004년 5월 4일)

“올해 쓸 천연 농약을 만들었습니다. 유황으로 만든 황유와 카놀라유로 만든 오일입니다.나름 살충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2014년 4월 29일)

충북 단양에서 15년째 친환경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정화려(51)씨가 자신의 농사 과정을 기록한 책 ‘유월농장’(유월농장, 2만원)을 최근 펴냈다.

정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36년을 살다가 불쑥 ‘자연과 함께 하는 육체노동’에 마음이 끌려 시골로 내려온 귀농인이다. 2000년 겨울 단양군 어상촌면 30여 농가가 모여 사는 돌다리마을에 정착해 직접 지은 흙집에서 살며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진짜 농사꾼’이다.

한창 때는 임대한 1만5000여평의 밭에 고추, 두릅, 감자, 호밀, 양파, 무, 고구마 등 10여 종의 작물을 재배하기도 했지만 2013년 초 몸이 아파 큰 수술을 받은 후에는 8000평가량의 밭에서 마늘, 수수, 콩, 들깨 등 4가지만 짓고 있다.

‘유월농장’은 그가 귀농해 겪은 농사 과정과 농사꾼의 삶을 투박하게 담아낸 영농일지인 셈이다. 작물재배법이 빽빽하게 적혀 있거나 농촌 생활의 단상을 가볍게 풀어놓은 아류 영농일지와는 사뭇 다르다. 298쪽 분량의 책장마다에는 초보 농부이던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그가 겪어온 농사 경험이 빼곡히 담겨 있다. 1000여장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파종부터 수확·유통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이 책은 친환경농사를 하려는 귀농인에게 긴요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12년간 반복되는 과정을 들춰보면 특정 작물을 재배하려면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망치는 고라니나 멧돼지의 심술, 탄저병·진딧물(고추) 파잎벌레(양파) 노린재(강낭콩) 거세미나방 애벌레(들깨) 등 특정 작물에 생기는 해충들, 폭설·폭우 등 자연재난, 뽑아내도 계속 솟아나는 풀과의 끝 모를 전쟁…. 농사의 어려움과 고단함이 절로 느껴진다. 단양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와 마을 풍물패 활동 등 농촌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보인다.

정씨는 “귀농한 사람들이 많지만 농사로 먹고사는 진짜 농사꾼이 농사 과정을 기록한 책은 거의 없다”며 이 책을 출간한 이유를 설명했다. 농사일의 때(時)를 정리해 둘 필요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농사는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어요. 며칠 차이가 수확의 성패를 좌우하죠. 12년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대강의 농사 적기(때)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지역에 따라 농사 시기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충청 등 중부지방에서 밭농사를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일부 방송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농사꾼의 삶이 낭만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농사를 취미 활동이나 부업 정도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농가당 연간 농산물 평균매출액은 3000만원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재와 인건비 등 비용을 빼면 1년에 1500만원을 손에 쥐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는 “농업은 홍수조절, 대기와 수질 정화, 수자원 보유 등 다원적 기능을 통해 연간 수십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런 측면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사일에 몸이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들 때도 가끔 있었지만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수많은 생명과 함께하는 농사일에서 보람과 기쁨도 느끼고 있습니다.”

정씨는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자 “‘대박’을 기대하면 실패하기 쉽다. 자연 속에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