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영화 ‘경성학교’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다수 등장하는 공포물이다. 많은 관객들이 ‘여고괴담’ 시리즈와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경성학교’에는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추악하고 비틀린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인간의 육체를 무기로 만들기 위해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어른들의 욕심과, 비릿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경쟁하는 아이들의 야망이 한 교실에 뒤섞였다. 박소담은 이 교실의 한 가운데서 급장 연덕을 연기했다. 그는 여태까지 봤던 십수개의 오디션 중 ‘경성학교’의 오디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경성학교’ 오디션은 배역을 열어 놓고 본 것이었기 때문에 제가 연덕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좁은 공간에서 이 영화 중 가장 극한의 감정이 나오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었죠. 여지껏 봤던 오디션 중 이만큼의 에너지를 썼던 적이 없었어요.”
박소담은 오디션에서 극 중 키이라의 발작 장면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상냥한 미소 속에 비밀을 감추고 있던 인물이 돌연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뒤튼다. 그는 베테랑 배우에게도 힘겨웠을 장면을 연기하며 다른 오디션보다 훨씬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일상적인 장면도 아니고, 본 적도 없는 역할이었기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만 했다. 박소담은 영화 ‘검은 사제들’의 오디션에서도 이 같은 마음가짐을 그대로 이어갔다며 웃었다.
‘경성학교’의 배경이 1930년대의 경성이었던 탓에, 일본어 공부는 필수였다. 일본에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언어적 측면에서는 숫자 정도를 셀 줄 아는 수준이었다.
“일본어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발음 위주로 외우고, 연기와 접목시킬 때는 다시 한 번 (일본어)선생님께 감수를 받았어요. 스스로 한 장면 한 장면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연구도 많이 했고요. 특히 영화 말미의 실험제안서를 읽는 부분은 선생님께서도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하셔서 연습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틈 날 때마다 선생님께 검사를 맡았어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을 부분은 수중 촬영일 터였다. 유리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통 안에 손을 쇠사슬로 결박당한 박소담이 들어가 있고, 물이 점점 차오른다. 그런 양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의 입장에서도 숨이 턱턱 막혔다. 박소담은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장면을 찍으면서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사실 영화에서는 편집됐지만, 수중 촬영이 하나 더 있었어요. 수경도 벗고, 호흡기도 떼고 5m 밑으로 내려갔던 신이었어요. 그걸 먼저 찍고 난 다음이어서 다음 수중 장면은 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더운 물은 습기가 차기 때문에 찬물로 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밑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허리까지는 괜찮았지만 가슴부터는 답답함이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카메라에 전신이 잡힐 때는 실제로 물 속에 푹 잠겼는데, 와이어를 몸에 묶었어요. 정말 힘들다 싶으면 제가 벽을 두드리고 스태프 분들이 건져주시는 거였죠. 몸은 힘들었지만 연덕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연기하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촬영장에 남자라고는 감독 이해영과 일본군 켄지 역의 심희섭 정도 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가득했던 현장 분위기를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정말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라며 만면에 미소를 드리웠다. 스물한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20대 여자들이 한데 모인다고 했을 때는 기실 걱정도 많이 됐을 터다. 그러나 박소담은 다들 같은 고민을 가진 또래 친구들이어서인지 시기와 질투보다는 서로 의지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대 여자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열여섯 명이 모여 있었어요. 모두 연기하는 친구들이기도 해서 뭐가 힘든 줄을 아니까 서로 도움이 되려고 했죠. 다 같은 교복에 같은 머리를 하고 있다 보니까 세트장에서는 사진도 많이 찍고, 장난도 많이 치면서 유쾌하게 촬영했어요. 오히려 감독님이 소녀들 기에 눌려서 힘드셨다고…(웃음) 한 번 수다를 시작하면 통제가 안 되니까요. 감독님은 외롭고 힘드셨다고 농담하시고, 희섭 오빠도 같이 놀자고 했는데 못 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즐거웠어요.”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성학교’는 완성됐다. 박소담은 생체 실험 부작용에 괴물처럼 변한 친구 시즈코(고원희 분)를 비밀 공간 속 반닫이 뒤로 밀어 넣었던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해당 신은 ‘경성학교’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가족도 없는 연덕이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시즈코를 제 손으로 밀어내는 장면에서는 절절한 공포가 흘러 넘쳤다.
“연덕은 시즈코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도 밀어냈던 과거를 주란(박보영 분) 앞에서 고백해요. 그 장면에서 가장 감정이 격해졌어요. 잘 표현해내고 싶었기도 했고요.”
박소담이 연덕을 완벽히 소화해내기까지는 이해영 감독의 힘이 컸다. 타고나길 담이 큰 것처럼 보이는 박소담도 처음 상업 영화의 주연을 맡을 적엔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을 터. 이해영 감독은 그런 박소담을 무한한 신뢰로 이끌었다.
“감독님께서 절 캐스팅 할 때부터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박소담이는 연덕이를 해 낼 수 있을 거야’라고 하셨어요. 믿어 주시고, 응원을 해 주셨던 거죠. 처음이다 보니 걱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 용기를 주셨어요. 엄청 떠는 성격도 아닌데, ‘경성학교’ 초반에는 괜한 부담이 됐어요. 제가 이걸 잘 끌고 나가야 상대 배우 분은 물론이고 감독님과 영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잖아요. ‘내가 잘 해야지’라는 부담감이 처음에는 안 좋은 부담감이었는데, 그걸 이겨내니까 부담감은 오히려 원동력이 됐어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영화 BEFORE & AFTER] ‘경성학교’ 박소담 “이해영 감독, 소녀들 기에 눌렸대요”
입력 2015-07-13 0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