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NESS ME!] 박소담 “친근하고 인간적인 배우로 남고 싶어요”

입력 2015-07-13 08:54
최종학기자 choijh@kmib.co.kr

(인터뷰①) 노래를 좋아하던 열일곱 소녀는 ‘그리스’를 보고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일년여 만에 극복하고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놀이처럼 배우던 연기는 어느새 입시로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10학번이 된 뒤에는 영상원 친구들과 만나 단편 영화들을 찍는 과정에서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됐다. 박소담은, 그렇게 배우라는 옷의 단추를 차근차근 꿰어 왔다.

“그래도 엄마는 ‘여자가 본인의 일을 멋지게 해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묵묵히 응원해 주셨지만, 아빠께는 거의 1년 넘게 무시당했어요.(웃음) 스무 살이 돼서 들어 보니까,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연기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저를 더 모질게 대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일을 즐기는 것이 행복해 보인다고 좋아해 주세요.”

독립영화 뿐만이 아니다. ‘일대일’ ‘마담 뺑덕’ ‘상의원’ ‘쎄씨봉’ 등 큰 영화의 단역을 거치더니, ‘경성학교’에서는 덜컥 주연을 맡았다. 하반기에 선보이는 작품만 해도 ‘베테랑’ ‘사도’ ‘검은 사제들’ 등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단역을 할 때와 주연을 맡았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분량이 비교적 적은 ‘베테랑’과 ‘사도’를 먼저 찍은 후 첫 주연작인 ‘경성학교’를 촬영했어요. ‘경성학교’가 제일 먼저 개봉하긴 했지만요. 그래서 단역부터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박소담은 데뷔와 동시에 주연을 꿰차는, 소위 ‘벼락스타’는 아니었다. 한 장면 정도 등장한 영화가 훨씬 많다. 그러나 오히려 단계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밟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맑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는 긍정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태 찍은 작품 중에서 저와 제일 닮은 역할은 아무래도 ‘경성학교’의 연덕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괜히 끌렸어요. 감독님께서 연덕 역할에 저를 낙점해 주셨을 때 더 감사하게 됐던 것도 있고요. 제가 맏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반장도 많이 했었는데 연덕도 급장으로서 반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고 리더십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속으로는 정도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표현하는 제 성격도 연덕과 비슷하고요.”

남들에게 도움을 받기 보다는 먼저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는 그는 과연 카리스마 있는 급장 연덕을 완벽히 소화해낼 만했다. 그런 박소담이 ‘검은 사제들’의 위험에 처한 소녀 영신 역을 맡아 삭발까지 감행했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 중 가장 자신과 닮지 않은 역할일 터다. 때문에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래 여배우들처럼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로맨스 영화를 어떤 배우와 해 보고 싶냐는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사실 기대하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유아인 선배님, 강동원 선배님 같이 내로라하는 배우와 작품을 했었는데, 다음은 어떤 분과 하게 될 지.”

러브스토리를 기대하는 천진한 눈이 빛났다. 쌍꺼풀 없는 눈매가 주목을 받은 부분 중 하나지만, 요즘은 그와 비슷하게 도화지 같은 느낌의 배우들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제2의 김고은’이라는 수식도 붙었다. 박소담은 그 가운데서 조금 걱정이 되지는 않았을까.

“홑꺼풀인 여배우들이 많이 없기도 하고, 제가 만났던 감독님들은 앳된 얼굴과 다른 중저음의 목소리를 좋게 봐 주셨어요. 화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그려지는 얼굴이라고도 해 주셨고요. 다들 처음에는 쌍꺼풀이 없는 것이 비슷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자세히 보면 닮지 않았고 연기 스타일도 다르다고 하셔서 크게 신경을 쓰는 부분은 아니에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느껴지는 당당함이 박소담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목표가 된 배우는 누구일까. 주저 없이 문소리를 꼽는 목소리가 활기찼다.

“저는 롤모델과 좋아하는 배우가 같아요. 좋아하다보니 그 분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문소리 선배님은 여자 배우로서 하기 힘든 역할부터 다양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 주셨잖아요. 저도 다양한 작품, 다양한 역할을 선배님처럼 멋지고 에너지 넘치게 소화해 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가 되고 싶은 배우는 친근하고 인간적인 배우인데, 문소리 선배님이 제게는 그런 분이세요. 어떤 작품이 제일 좋다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선배님의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해요.”

외국 배우 중 좋아하는 사람을 묻자, 앤 해서웨이와 샤를리즈 테론을 거론했다. 두 배우 모두 작품 속에서 삭발을 한 적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친구들이 ‘매드 맥스’를 보다가 제 머리가 생각이 났대요. 제가 긴 머리를 굉장히 오래 유지했는데, 짧은 머리를 하고 나니까 멋있어졌다나요. 그러면서 ‘너도 저렇게 멋진 여전사를 꼭 한 번 소화해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박소담의 말씨는 느렸지만 막힘이 없었다. 그는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여지껏 맡았던 역할들이 사연 많고, 기구하고, 거의 무표정을 하고 있는 어두운 인물들이었어요. 앞으로는 좀 더 밝고,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단편 영화에서 액션을 짧게 한 적이 있는데, 그런 강한 여성을 표현하는 액션 연기도 해 보고 싶고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