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유명 백화점에서 범행을 저지른 강도범의 딱한 사연이 공개돼 주의를 안타깝게 했다. 세월호와 메르스로 사업이 부도을 맞아 생활고에 시달리던 50대 남성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장시간 굶주린 탓에 범행 도중 칼까지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13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9시쯤 서울 강남구의 위치한 한 유명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쇼핑을 마친 A(60.여)씨가 벤츠 승용차에 타고 시동을 거는 순간 50대 남성이 조수석에 따라 타 공업용 커터 칼을 들이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A씨는 “그냥 돈을 가져가라”고 말하며 출발하지 않고 이 남성과 승강이를 벌이 던 중 강도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렸다. A씨는 차 밖으로 나가 비명을 질렀고, 강도는 달아났다.
신고를 받은 서울 강남경찰서는 CCTV를 뒤져 범행 5일 만인 10일 오후 경기도 문산의 한 식당에 딸린 컨테이너 집에서 용의자 이모(52)씨를 붙잡았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전과는 커녕 고등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이씨는 경기도에서 학교에 건축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의 ‘사장님'이었지만 작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학교 공사가 급감하는 바람에 사업이 기울더니 결국 부도를 맞았다.
올해 재기를 꿈꿨지만 이번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예정된 공사가 줄줄이 취소돼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쪼들리게 됐다. 설상가상 모친은 암 투병 중이고 형은 백혈병을 앓아 형에게 골수를 이식하려고 수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씨가 검거된 컨테이너 집도 지인이 마련해 준 임시거처였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원래 범행을 작정하고 강남에 간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그는 “딱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부자가 많이 산다는 서울 강남에 가서 사정하면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범행 전날 무작정 지하철을 잡아타고 3호선 신사역에서 내린 이씨는 여성 혼자 운전하는 외제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범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룻밤을 길에서 보낸 이씨는 5일 백화점 폐점 시간이 돼서야 범행을 저질렀지만 전날부터 밥을 먹지 못해 힘이 없었고 A씨의 저항에 힘없이 커터 칼을 떨어뜨렸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커터 칼도 백화점 화단에서 주운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애초에 강도질을 하려고 강남에 왔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이씨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씨가 갑자기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며 “CCTV를 봐도 이씨가 범행 후 걸어서 도주할 때 매우 힘겹게 걷는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 11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세월호·메르스로 부도 맞은 50대 남성 강도범으로 돌변…배고픔에 칼까지 놓쳐
입력 2015-07-13 07:05 수정 2015-07-13 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