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채무 불이행)까지 감수하며 ‘벼랑끝 전술’을 펼쳐온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부채 탕감’을 얻어내기 위해 국제 채권단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가 재정수지 개선을 위한 고강도 개혁안을 국제 채권단에 9일 밤(현지시간) 제출함에 따라 그리스 사태 해결의 공이 다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으로 넘어갔다. 채권단은 11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 개혁안을 평가하게 된다. 이후 12일 오후 3시 및 오후 5시(한국시간 13일 0시)에 잇따라 열리는 유로존 정상회의 및 유럽연합(EU) 28개국 정상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개혁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일단 개혁안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개혁 조치들이 담겼다. 법인세를 26%에서 28%로 올리고, 그리스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호텔 및 식음료업의 부가가치세를 기존 13%에서 23%로 대폭 상향했다. 아울러 연금수령 연령을 두 살 더 늘려 67세로 하기로 했으며 저소득층에게 추가로 지급해온 연금보전 혜택도 없애기로 했다. 국방비까지 줄여 향후 2년 간 3억 유로(약 3760억원)가 줄어들게 된다. 이를 통해 향후 2년 간 그리스 재정수지가 120억 유로(약 15조1000억원)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앞서 그리스가 채권단과 큰 틀에서 합의했던 79억 유로 규모의 재정수지 개선책보다도 더 많은 규모다.
영국 BBC 방송과 AP통신 등은 10일 이번 개혁안에 대해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들이 부결시킨 채권단의 협상안보다도 훨씬 엄격한 개혁 조치를 담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그리스가 무릎을 꿇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이번 개혁안에 대해 그리스 내부 반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집권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당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투표에서 긴축안에 반대표를 던진 노동조합, 젊은층 등으로부터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스는 이번 개혁안 제출로 향후 3년 간 모두 535억 유로(약 67조원)의 구제금융을 추가로 받기를 원하고 있다. 아울러 전체 빚 3230억 유로(약 405조32억원) 가운데 30%를 탕감받길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채권단이 그리스에 추가적인 구제금융은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채무탕감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최대 채권자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리스가 개혁안을 제출하기 몇 시간 전에 기자들과 만나 ‘전통적 헤어컷(채무탕감)’은 고려 대상이 아님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채무탕감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낸데 이어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채권자들이 그리스의 이번 개혁 조치에 부응해 ‘감당할만한 규모의 빚’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단순히 빚을 깎아주는 전통적 채무탕감 대신 이자율을 낮추거나 상환일을 한참 뒤로 더 유예해주는 ‘비전통적’ 방식으로 그리스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은 내다봤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그리스 새 개혁안은 만족스럽지만, 빚 탕감이 문제
입력 2015-07-10 17:39